날씨는 화창하고 숲은 울창한데 사람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하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나쁜일이 없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행복하지가 않다.

옛 사람들은 가족들 무고하고 하늘보고 부끄럽지 않고 아랫사람 가르치는
일을 세가지 낙으로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가족들은 흩어지고 하늘 보고도 부끄러운 짓하기 예사고 아랫사람 가르치는
일은 포기한지 오래다.

삼락은커녕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관심으로 세가지 무만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방선거철이 되니 만성고질병인 비방 폭로까지 전염시키고
있다.

철새처럼 자리를 바꾸거나 자리다툼하는 텃새들이 늘어난다.

거기에다 뱁새까지 덩달아 쟁탈전을 벌인다.

"까마위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며 자신의 지조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옛 선인들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백조와 까마귀가 구별되지 않는 요즈음이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가 가고 백로 싸우는 골에 까마귀가 간다.

이렇듯 사이비들이 판치는 풍토에서 속과 겉이 흰 인격있는 백로를 만나기란
오뉴월에 서리내리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영국의 처칠경이 비싼 옷을 맞춰 입으면서 비싼 돈으로 옷을 사는것이
아니라 옷을 만든 사람의 인격을 사는 것이라고 한 말이 오늘은 새삼 새롭다.

우리도 언젠가는 인격을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잘 살수 있을까?

돈으로 사람을 사는 나라에서 가져보는 슬픈 희망이다.

희망이란 길과 같아서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는 말도
오늘따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인격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가 법이 많은 사회보다 살맛나는 사회일
것이다.

IMF때문에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사람들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우선 제자리를 제대로 지키는 것이 위기를 이기는 한 방편일 것 같다.

제자리를 제대로 지켜서 우리도 삼락을 누릴수 있는 날을 빨리 맞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