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을 매우
부러워한다.

마음 먹고 준비하지 않더라도 몇시간만에 훌쩍 다녀올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 지척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산을 찾는 사람은 똑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그날 선택한 루트에 따라서
산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는 것을 느낀다.

이른 봄에 북한산의 북쪽 능선을 타고 오르면 하얀 잔설이 곧 떠나가야
할 겨울의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남쪽 능선의 진달래 개나리 꽃망울은
발아래로 봄이 다가오는 것을 전해준다.

인간은 누구나 서로 다른 등산로를 타고 인생여정에 오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어디에 내딛느냐에 따라 평생의
진로가 결정되어 버린다.

그래서 시인 프로스트는 "가보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를 통해 외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안타까움을 노래했나 보다.

기업에도 마치 등산로처럼 몇 갈래의 다른 길이 있다.

우리산업이 노동집약적이던 시절에는 주로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일반관리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었지만, 기술이 기업의 핵심경쟁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부터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기술자출신 경영자가 차츰 늘어 나고 있다.

기업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중 하나는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경영자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 관점을 바꾸기보다는 그동안 자기가 주로 걸어왔던 경험의 잣대로만
매사를 재단함으로써 상황판단을 그르쳐 그 기업의 실패는 물론 국민경제에
까지 큰 충격을 주게되는 경우를 최근 우리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

나도 인간이기에 내가 아는 잣대로만 상황을 판단하려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가보지 않은 길"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을 써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