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의 봉건사회는 신분의 징표인 칭호가 각별히 소중하게 여겨진
사회였다.

그래서 학위는 절대적 위력을 지녔다.

학위소지자에게는 그만큼 사회적 신분상승의 길이 열렸다.

학위는 우선 대학교수가 될수 있는 면허장이었다.

교수들은 "고귀한 사람" "지고의 시민"으로 숭앙됐고 국왕의 고문이나
대사 고위성직을 겸하기도 했다.

그것이 여의치 못했던 교수들은 서적상 약종상을 경영해 돈을 모았다.

학생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전당포를 운영했던 교수들도 많았다.

그 결과 중세에는 교수의 연구열이나 교육심보다 학생들의 학구열이 더
높았다.

"옥스퍼드에 많이 찾아오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채 돌아간다"는 말이
생긴것도, 교수들이 "언어의 상인"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학문의 암흑기"인
바로 이때였다.

근래들어 우리사회에서도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던 대학교수사회가 자주
도마위에 올라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심사나 교수임용을 둘러싼 뒷거래, 돈 명예 성에 대한 끝없는
탐욕, 교육이나 연구보다는 학내정치에 몰두하는 일부 교수들의 지저분한
모습은 책이나 보도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현대 대학의 기능은 "연구" "교육" "봉사"로 집약되지만 연구나 교육보다는
얄팍한 지식을 이용한 사회활동에 더 바쁜 교수들을 보면 그들이 봉사요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미나교수 TV탤런트교수 매스컴단골교수들이 판을 치고, 학자 성직자
정치가를 구별하기조차 힘든 것이 요즘세상이다.

심지어 학생들이 교수를 돈과 페스탈로치의 합성어인 "돈탈로치"라고
부르고 교활한 짐승이란 의미로 "교수"라고 한다지 않는가.

물론 학문적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교수들이 많다.

그러나 교수사회를 주도하는 인물은 이들 "속물지성"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최근 국내대학의 보직교수가 3명중 1명꼴이라는 교육부의 조사결과가
발표돼 교수들이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예산낭비.명예에 돈이 따르는 대학풍토도 문제지만 정작 두려워 해야 할
것은 학문의 싹을 뭉개버리는 교수사회의 관료화가 아닌가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