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가 새나가고 있다.

기업들이 가동하던 고급기계를 헐값에 해외에 내다파는가 하면 고급기술
인력들이 앞다퉈 미국 일본 등으로 빠져 나간다.

중소기업들이 그동안 엄청난 연구개발(R&D) 투자로 일궈낸 첨단기술을
헐값에 동남아지역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부도및 가동중단 등으로 곧
처분해야할 유휴설비는 공작기계 소형플랜트 계측장비 등 분야에서
21조4천억원어치에 이른다는 것.

올들어 이들 유휴설비중 밀링머신 프레스 와이어커팅기 등을 중심으로 약
1천1백억원어치가 동남아및 중국지역으로 헐값에 팔려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 머신인터뱅크 등 유휴설비 수출에 노하우를 가진 업체를 통해
수출된 경우는 비교적 제값을 받았으나 개별바이어들에 수출된 설비는
도입가격의 3~30%선에 팔리고 있다.

최근 대전 대덕에 있는 승우정밀기계는 1년전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25억원
짜리 기계가공설비를 구입가격의 30%에 동남아국가에 팔았다.

부품주문감소로 기계를 놀릴 때가 많은데다 두달째 밀린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이 회사의 설명이다.

박두환 중진공 유휴설비처분지원팀장은 "올들어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서
중고기계를 수입해 가려는 바이어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으나 이들이 국내
기업의 약점을 노려 제값을 주지 않고 있어 가능한한 국내기업끼리 사고팔수
있도록 연결시켜 준다"고 밝힌다.

유휴설비보다 국부유출이 더 심각한 분야는 고급인력 부문.

미국 일본 등에서 2000년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연구사업에 인력이
모자라자 한국에서 전산분야 고급인력을 조달해가는 바람에 국제통화기금
(IMF)체제 이후 약 3백50여명의 고급기술을 가진 프로그래머들이 한국을
빠져 나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유니온기술 인테크정보 등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일본및
미국 벤처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업체당 15~20명의 고급인력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이들이 빠져 나가는 곳은 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일본의 기업연구소.

과학기술자단체총연합회는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첨단과학기술자는 미국
1만5천명, 일본 6천명, 독일 1천명, 영국 6백명, 프랑스 5백명 등 2만5천명
정도인데 이 숫자는 지난해초보다 3천명정도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이 단체가 해외첨단기술자들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실시해온
"브레인풀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오는 고급인력은 올들어 한사람도 없었다고
설명한다.

국내 기업들이 부설연구소의 인원을 대폭 줄이고 있어 들어와봤자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여 개발해놓은 첨단기술을 해외에 급처분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도료업체인 H사는 자금난에 시달리자 산업용도료 제조기술을 매출액대비
1.2%의 낮은 로열티로 필리핀업체에 넘겨줬다.

부천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인 Y사도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1억8천만원이
부도나자 부품제조기술을 거래업체인 인도기업에 낮은 가격으로 넘기고
말았다.

올들어 이처럼 제값을 못받은 기술수출이 7~8건에 이른다는 것.

업계는 고급인력 첨단기술 기계설비 등 부문에서 공동화 현상이 곧 나타날
것으로 보고 국부유출을 막을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 이치구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