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 선정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은 이견조정기능 상실에 따른 정책표류의 대표적 사례를 보는 것 같아
한심하기까지 하다.

지난 1월 월드컵 조직위가 마포구 상암동에 주경기장을 신축키로 결정한
이후 지금까지 전개돼온 일련의 정책표류과정은 새삼 돌이켜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무원칙과 혼선의 연속이었다.

정부는 지난 17일 월드컵 대책회의에서 주경기장 선정을 2주간 연기키로
결정, 이번주말까지는 결말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또다시 결정을 다음주로
늦추기로 했다.

좀 더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최근 이동찬
월드컵조직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차기 위원장 인선문제가 주경기장
선정을 지연시키는 또다른 요인이 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정부로서는 최종결정을 지자체선거후로 미루고 싶기도 하겠지만 이젠 정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더이상 정치논리에 끌려다니지 말고 하루빨리 최종 결론을 내야 한다.

대책회의의 결론은 상암동주경기장 신축안과 인천문학경기장 증축안,
잠실주경기장 개.보수안 중에서 택일하는 것이 되겠지만 주경기장은 국제
축구연맹에 제출한 당초 계획대로 상암동신축경기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이는 이미 국제사회에 공언한 약속이고 공동개최국인 일본과 시설이나
경기진행 등 모든 면에서 너무 큰 격차를 보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경제위기를 이유로 "최소비용이 드는" 선택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월드컵이 단순히 체육행사에 그치지 않고 국가홍보와 국가위상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볼 때 성대한 국제스포츠제전에 걸맞은
"제대로 된"시설을 갖추는 것은 개최국이 이행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하다.

주경기장 선정과 관련, 새정부의 방침이 왔다갔다 하자 지자체들의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정이 어려워진 감이 있지만 문제가 꼬일수록
원칙과 순리로 돌아가는 것이 해결의 지름길이다.

주경기장 선정을 "정치게임"으로 인식하는 그릇된 시각만 바로잡힌다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수 있다.

상암동주경기장 신축에 들어가는 비용중 사회간접자본비용을 제외한 순수
건설비는 2천억원 정도인데다 4년간에 걸쳐 분할 소요되기 때문에 부담못할
액수도 아니다.

또 상암동경기장을 신축할 때의 경제.사회.문화적 효과는 새삼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상암경기장 신축은 결코 거품이나 과소비가 아니다.

월드컵은 88올림픽에 이어 우리 민족의 역량과 국가의 저력을 다시한번
세계에 확인함으로써 대외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4년뒤의 월드컵개막식은 우리가 IMF사태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다시 우뚝 섰음을 전세계에 선언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하루속히 혼선을 수습하고 당초 계획대로 상암동에 그 축제의 마당을
마련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