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증권에 근무하는 김일섭 대리(32).

그는 요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며칠째 빚독촉을 받고 있어서다.

물론 자신이 받은 대출때문이 아니다.

그렇지만 B은행은 날마다 전화를 걸어온다.

"채권행사에 들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앞으로 5일안에 빚을 해결하지 않으면 월급을 압류하겠다는게 B은행의
최후통첩이다.

김 대리가 생각지도 않은 빚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친구 때문.

김 대리는 작년초 친구가 2천만원을 대출받을 때 보증을 섰다.

친구가 잘나가는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어 아무 생각없이 보증인이 됐다.

그러나 웬걸.

친구는 어느날 갑자기 소식이 두절됐다.

직장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자 B은행에서는 보증인인 김 대리에게 대신 대출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나섰다.

생각하다 못한 김 대리는 C은행을 찾았다.

신용대출이라도 받아서 일단대출금을 대신 갚아보자는 요량에서 였다.

그러나 "아니올씨다"였다.

C은행은 증권사직원에 대한 신용대출은 일절 취급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개인파산이 또 다른 파산을 부르고 있다.

개인파산은 채무자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곧바로 보증인에게 파급된다.

대출금을 채무자가 갚지 못하면 그 책임은 보증인에게 떠 넘겨진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보증인은 꼼짝없이 신용불량자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더욱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최근들어 연체축소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자가 하루만 밀려도 어김없이 전화를 해댄다.

채무자고 보증인이고 가리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가계대출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다보니 은행들도
어쩔수 없다.

지난달말 현재 16개 시중은행중 국민 주택은행을 제외한 14개시중은행의
가계대출연체액은 2조1천6백45억원.

작년말(1조3천5백34억원)보다 59.6%(8천71억원)늘었다.

금융기관들이 채무자와 보증인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넣고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신규대출과 연장중단은 기본이다.

모든 은행들이 연체대출금리를 연25%로 올렸다.

일부 신용카드사들과 할부금융사들은 연35%까지 연체금리를 인상했다.

이자를 잘 내고 있어도 툭하면 대출을 갚으라고 성화다.

하나은행은 아예 한달에 한번 재직여부를 확인한다.

신한은행과 보람은행은 직장을 그만두는 즉시 대출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연체회수는 "전투"다.

국민은행은 전직 경찰관과 군인출신 1백30여명을 특별채용, 연체회수를
전담토록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채무자는 물론 보증인도 연체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빚갚을 능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

채무자 한명이 잘못되면 평균 2명의 보증인이 문제가 된다.

보증인까지 합한 실제 신용불량자는 6백만명에 이를 것이라는게 금융계의
추산이다.

파산이 파산을 부른다.

< 하영춘.정태웅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3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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