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호가 닻을 올렸다.

선장은 기획예산위원회.

위원회 산하 정부개혁실이 항해사를 맡았다.

이 배는 1백8개 공기업이라는 짐을 싣고 효율성 경쟁성이라는 항구를
찾아 떠난다.

항해일정도 윤곽이 잡혔다.

앞으로 두달안에 어떤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민영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이 마련된다.

계속 공기업으로 남아있을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혁신방안도 준비된다.

몇몇 공기업은 조기에 매각될 가능성도 높다.

공기업개혁의 모델로 삼겠다는 의도에서다.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서두는데는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적으로 공기업의 비효율성이 꼽힌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경쟁성을 상실한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의 비효율성을 제거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또 하나는 심각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공기업을 외국자본에 개방하겠다는
것도 민영화의 핵심 목표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재원조달이다.

실업대책기금 구조조정기금 등 돈쓸 곳은 부지기수다.

이 자금을 공기업을 팔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IMF지원을 받아야 했던 영국 대처정부의 공기업 대수술을 본보기로
삼고있다.

영국이 "작은 정부"를 앞세우며 공공부문을 대대적으로 개혁했듯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영국 개혁전문가 다이애나 골즈워디(53)여사는 "공공부문
개혁의 혁심은 경쟁원리를 도입한 민영화"라고 조언했다.

이런 배경을 깔고 공기업 정리원칙도 큰 테두리가 마련됐다.

일단 경제 사회여건변화로 필요가 없는 기관은 없애거나 줄인다.

민간경영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면 민간에게 넘긴다.

공공성과 기업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분야 역시 강도높은 구조조정후
단계적 민영화절차를 밟는다.

공공성이 강해 공기업으로 남는 곳은 내부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식이다.

민영화 방법도 다양하다.

공모를 통한 주식매각방식에서부터 자산매각 사업분할매각 등 모든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국내외 자본과 1대1 직거래도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항해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암초가 많다.

부처와 해당기업의 반발이 1차적인 걸림돌이다.

일부 공기업은 벌써부터 관계 요로에 살아남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노조 반발이라는 태풍도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더욱이 여론 향방도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국가 기간산업을 해외에 매각한다"는 방향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나오게 마련이다.

박승 중앙대교수는 "개혁에는 항상 저항세력이 있는 법"이라며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여기에 민영화라는 "미끼"를 선뜻 물 물고기(외국자본)가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다.

공기업 시장 문을 활짝 연다해도 외국손님이 모여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물론 충격요법은 있다.

기획예산위는 상반기중 5~6개 공기업을 선별,하반기에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꺼번에 바겐세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오픈 기념행사를 가진다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라는 공공부문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는 의미도
있다.

진념 기획예산위 위원장은 "국제시장에 내놓을 만큼 상품을 포장해
매각가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를 해서 우려하는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공기업민영화 호는 이제 막 출범했다.

해도는 그려졌지만 항해일지는 백지다.

빈 일지를 어떤 내용으로 메울지 관심거리다.

<김준현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