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남자가 집에 와서 하는 말은 "내다(나다)" "아는(아이는)" "먹자"
"자자" 네 마디뿐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부부싸움의 발단중 상당수는 "식탁에서 신문 보지 말라"와 "드라마 좀
그만 보라"는 말이라고 한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에도 각자 TV화면만 바라보다
잠자리에 드는 것이 대다수 한국가정의 모습이다.

한국출판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97년 우리나라 사람의 TV시청시간은 평일
1백34분, 주말 1백52분으로 독서시간(평일 40분, 주말 27분)보다 평일은
3.4배, 주말은 5.6배나 많았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의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4개국의 TV시청시간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은 1위를 차지했다.

TV는 부부끼리는 물론 부모와 자녀의 대화를 앗아간다.

뿐만 아니라 시청률 경쟁은 채널별 특성을 없애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 결여된 상태로 이끈다.

아침드라마는 이혼, 주말드라마는 신데렐라 탄생을 주제로 삼고
남자주인공을 무조건 순정파로 꾸며내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TV속 신데렐라를 보는 여성들은 대리만족 단계를 넘어 소박하고 성실한
남편을 멍청하고 무능한 남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커진다.

깡패를 미화한 드라마를 보는 청소년들은 폭력세계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환상을 키울 수 있다.

10대 중심의 가요프로그램은 부모 자식 사이의 괴리감을 증대시킨다.

무대는 현실을 살펴볼수 있는 잠망경이다.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무시한채 대리만족 기능을 내세워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시청자를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국 워싱톤에 본부를 둔 "TV없는 미국(TFA)"이 22일부터 1주일동안
"TV안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참가자는 5백여만명.

영국 덴마크 등 다른나라도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TV를 끄고 인생을 켜는 1백가지 방법"이라는
팸플릿에는 가족끼리의 산책, 고장난 가구 수리, 별자리 찾기, 자녀
책읽어주기 등이 포함돼 있다고 전한다.

TV를 끄면 우선 생각하고 읽고 얘기할 시간이 생길 것이다.

"프로그램의 질보다 과다한 시청에 희생되는 인생의 참의미가 문제"라는
TFA 라발머 회장의 말에 모두 귀 기울였으면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