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영 < 건국대 교수.부동산학 >

복합불황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복합불황이란 말은 아직 과학적인 정의를 가지지 못한 매스컴 용어로,
대체로 실물경제부문과 금융부문이 서로를 위축시키고 부실화하는 악순환
속에서 경제의 모든 부문이 불황상태에 빠져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런 악순환구조가 형성되면 경제내 한 부문의 침체를 다른 부문들이
보완하여 일으키기를 기대할 수 없고, 경기회복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힘들다.

그런데 실물부문과 금융부문 사이에 형성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부동산이기 쉽다.

기업이 부실화되더라도 은행이 담보 부동산을 처분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 기업부실이 직접적으로 은행부실로 연결되지 않는데 부동산 가격이
지역과 유형을 가리지 않고 폭락한다면 기업부실이 곧바로 은행부실로 연결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80년대 하반기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중 많은 나라에서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대출→부동산 가격 거품의 형성→거품소멸에 의한
가격폭락→부동산대출 회수불능→금융기관 부실화→실물경제의 위축이라는
악순환을 겪은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현재의 부동산가격 하락현상이 복합불황의 전조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일본과 동남아 유럽의 여러 국가들, 북미 일부 지역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급락, 그리고 이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화문제를
경험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부동산은 이동할 수 없는 속성으로 인해 국가간 교역이 불가능하며,
그 거래와 소유에 대해 나라마다 매우 다른 제도와 관행이 통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의 부동산 경기변동이 동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이런 동조현상을 설명하는 국제적인 요인은 무엇이며, 이 요인들이 국내적
특수성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아직도 중요한 연구대상이지만,
적어도 90년대초의 부동산 가격급락에 까지 이르는 부동산 경기변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 있다.

즉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던 일본의 자본이 국가간 자본이동의
자유화라는 범세계적 추세속에서 동남아 유럽 북미 일부 도시에 대거 유입
되었고, 금융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업무영역의 벽이 허물어지는 반면에
마땅한 대출처가 줄어들던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대출을 적극 확대해 간 것이
80년대 하반기의 부동산경기 상승국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이다.

1990~91년을 정점으로 하여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직간접 부동산 담보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은행이 부실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결과 일본의 자본유출은 막대한 자본유입으로 반전되었으며, 다른
나라들의 부동산시장에서도 가격이 하락하고 금융기관이 부실화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부실대출에 허덕이는 금융기관들이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실물경제의 침체가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와같은 경험은 국제간 자본이동 금융규제 부동산산업 및 자금조달 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정책과제를 던져준다.

피상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현 경제상황이 다른 나라들의 90년대 초반
경험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그 원인과 결과는 매우 다르다.

첫째 일본 등 다른 나라들에서 80년대 하반기에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이
주로 금융권에서 대출된 자금에 힘입었던 것임에 비해 우리나라는 강력한
여신규제 때문에 금융자금이 부동산 부문에 유입되기 힘들었다.

둘째 외국에서는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로 그 감정가격 이상으로
대출을 해주는 예가 많았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한 여유가 있다.

토지의 경우 싯가의 80~90%정도인 공시지가의 70~80%정도를 담보가액으로
쳐주기 때문에 토지가격이 30~40%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대출금 회수에는
문제가 없으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있는 현재도 담보가액이 싯가를
하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셋째 외국의 경우 부동산 가격폭락을 원인으로 하여 금융권 부실이
초래되었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대출의 부실화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을 진원지로 하는 복합불황은 아직
논의하기 이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처방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비슷하다.

즉, 부실채권의 담보로 잡혀있는 부동산들을 한시바삐 매각하여 대출액의
일부나마 회수함으로써 금융기관들이 본래역할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관련 금융이 발달해 있는 나라들에서는 부동산의 유동화를 위해
다양한 금융기법, 예컨대 부동산담보부채권 발행, 부동산투자신탁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나, 우리나라는 부동산 부문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시행한 결과 거의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부동산 부문을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진 중요한 경제부문으로 인정하고,
이에 합당한 금융제도를 발전시켜 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