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경제기획원장관 등을 역임한 재계 원로 남덕우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이 22일 한국생산성본부 초청 "금융개혁의 제문제" 강연회를 가졌다.

남 이사장은 이날 정부의 개혁상황과 관련, "정부내 개혁추진의 중심체가
없어 혼선을 빚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재벌개혁에 대해 "하루아침에 이뤄질수 없는 문제"라고 전제하고
"빨리 하라고 다그칠게 아니라 개혁이 이뤄질수 밖에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뒤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이사장의 강연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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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하려면 우선 목적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특히 금융개혁에서는 금융과 정부, 대기업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정부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통제형, 코치형, 레프리(심판)형 정부가 그것이다.

통제형 정부는 민간경제에 광범위하게 간섭하는 유형이다.

정경유착과 부패가 심하고공공부문이 비해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코치형정부의 전형적인 예는 일본이다.

정부가 민간경제를 지도한다.

따라서 완전한 시장경제라고 볼수 없다.

마지막 레프리형 정부는 민간경제 활동에서 정부가 중립적 역할을 한다.

위법을 저지르는지 감시할뿐이다.

정경유착이나 부패가 비교적 덜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서구각국의 정부가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업과 금융이 서로 독립돼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각국이 지향하는 정부상이 바로 이 레프리형이다.

한국이 가야할 방향도 이길이다.

21세기 국가목표는 살기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기좋은 나라란 무엇인가.

사업하기 편하고 세계 도처에서 성장요인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다.

항공, 해운 등 교통의 중심지다.

이점을 잘 이용해 21세기형 국가로 변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개혁의 비전과 목표를 정확히 제시하는게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금융개혁을 논해 보자.

우선 금융개혁의 목적은 무엇인가.

목적을 알려면 현재금융시스템의 문제점 파악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 국내 금융시스템의 문제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금융의 자율성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간섭이 너무 많은 관치금융체제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정부는 금융자율화를 부르짖었지만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그 이유는 금융과 대기업간 유착이 심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이 대기업에 끌려다녔다.

그러다보니 금융의 본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합리적 자원배분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금융이 발달한 미국에는 양자간 엄격한 독립이 유지되고 있다.

시티코프가 제조업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책임경영체제가 갖춰지지 못했다는게 두번째 문제점이다.

은행도 주식회사다.

주주총회나 이사회중심의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점에서 은행의 이사들은 거의 제역할을 못했다.

정부의 관여가 심했다.

셋째, 금융감독의 부실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이다.

정부가 감독기능을 제대로 했다면 현재와 같은 상태는 빚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3대 문제점이 현재의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물론 금융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화, 세계화 물결이다.

위에 지적한 3가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자본시장
의 문을 열었다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국내금리가 국제수준의 2-3배에 달하는 상태에서 개방하자 그 틈새로
헷지펀드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투기성 단기자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관리를 소홀히 했다.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지 못했다.

유동성준비가 불충분했다.

앞으로 금융개혁의 방향은 앞서 지적한 3가지 문제와 같은선상에 있다.

우선 금융의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개혁의 목적과 방법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을 빚고 있다.

자율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기업개혁까지 일일히 간섭
하고 있다.

금융파탄을 가속화 시킨 기아사태만 봐도 그렇다.

기아사태는 원칙적으로 채권은행의 문제다.

그러나 관치금융속에서 은행들은 정부눈치만 봤다.

정부는 겉으로 시장원리를 외쳤다.

그렇다고 완전히 개입하지 않을수도 없었다.

결국 우왕좌왕하느라고 세월만 보냈다.

결국 금융파탄을 재촉한 꼴이 됐다.

목적이 세워지면 원칙에 맞는 방법으로 정책을 밀고나가야 한다.

기아의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정부다.

어차피 정부가 간섭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렇지만 형식은 목적에 합당해야 한다.

즉 산업은행이 정식으로 이사회를 열고 합당한 절차를 통해 문제해결방안이
모색돼야 했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면 관치금융은 끝이 없다.

뚜렷한 목적의식과거기에 부합하는 절차, 방법을 찾는게 중요하다.

여기서 책임경영도 나올수 있다.

금융감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적 중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새 감독기구로 출범했다.

금감위가 제구실을 하려면 "무자산 특수법인"으로 지정돼야 한다.

명확한 임무와 방법을 국회에서 정해줘야 한다.

금융을 외부입김에서 완전히 막아내기란 어렵다.

인사청탁, 대출청탁에서 자유롭게 객관성을 유지하는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의 인사간섭,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의 대출청탁에 대해 강력한
처벌조항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국회에서 법제화해야 한다.

현재 경제개혁과 관련, IMF처방에 대한 논란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IMF처방이 1백% 옳은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우선 자금경색과 고금리문제를 보자.

자금경색은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비율 8% 맞추기에서 비롯됐다.

이 기준을 맞추려고 대출을 기피하고 빌려준 돈을 회수하다보니 시중에
돈이 마르고 있다.

IMF 논리는 이런 매카니즘이 한계기업을 도태시키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기업대출이 줄면 부실기업이 사라지고, 부실대출이 사라지면 금리가 내려
가고 정상화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산업기반이 붕괴될수 있다는 점이다.

BIS 8%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난 87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정한
정치적 기준이다.

일본금융기관들은 BIS 자기자본비율이 평균 4%다.

각국마다 상황이 다르다.

모든걸 미국식으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아시아는 우리식 기준으로 하겠다"하고 아시아 각국이 공동전선을 펴야
하는데, 현재 아시아에서 리더가 없기 때문에 끌려가는 것이다.

고금리 문제도 그렇다.

현재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외자유치가 필요하다.

고금리로 외국자금을 유인해야 한다는 원칙은 백번 옳다.

그러나 어느정도의 고금리냐가 문제다.

국제수준의 3-4배에 달하는 현행 금리는 너무 심하다.

IMF에서는 임시조치라고 하지만, 과연 임시조치의 기간이 3개월인지, 1년
인지, 얼만큼인지 분명치 않다.

이대로 오래가다간 기업들이 다 망할 것이다.

고금리에 스테그플레이션, 물가고, 저성장 등 경제여건이 나빠지는 상황
에서는 제아무리 금리를 올린들 외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고금리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

IMF는 이런 거시경제정책보다는 첫째, 구조조정을 확실히 보장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과, 둘째, IMF와 선진7개국(G7)이 약속한 5백88억달러의
공적 지원금이 하루빨리 한국에 들어오도록 하는일에 중점을 두는게 옳다.

대기업 개혁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 조급하게 몰아부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대기업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게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정부는 개혁이 확실히 이뤄질수 있도록 제도적장치를 보장해야 한다.

"좋은 기업부터 싼값에 팔아라"는 정부의 주문도 무리가 있다.

재벌의 부실기업 정리는 우선 성업공사에 넘긴뒤 재무제표를 정상화하는게
좋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개혁추진에 중심체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누가 개혁의 중심축인지 혼동스럽다.

대통령이 개혁의 모든 문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
취약하다.

예산기능만 하더라도 혼란스럽다.

예컨데 국회에서 예산관련 답변은 누가해야 하나.

기획예산위원회는 청와대 직속이고 위원장이 국무위원이 아니므로 국회
답변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결정권도 없는 재경부가 나서는 것도 우습다.

따라서 재경부 재편도 잘못됐다.

중앙은행은 금융기능, 예산기능은 재경원에 뒀어야 했다.

< 정리=노혜령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