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쏟아 놓은 경제대책들이 알맹이가 없거나 관계부처간에 조율이
안돼 일선 행정기관에서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문제다.

재원조달을 고려하지 않은채 "한탕주의"식으로 무책임한 대책들을 양산하는
버릇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시중에서는 "준비된 대통령에
준비안된 정부"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새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두달도 안된 마당에 일사불란한
대응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6.25이후 최대의 국가위기라는 경제난속에서 국민들은 새정부의
정책혼선을 집권초기의 시행착오라고 눈감아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정책당국은 지금이라도 경제대책의 우선순위, 재원조달방안 및 책임소재
등을 명확히 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각종 대책의 재원조달방안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확정된 실업구제 및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에만 3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성업공사와 예금보험공사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이 각각 14조원,
12조원의 국.공채와 1조6천억원의 무기명 장기채를 발행하고, 공기업 정부
지분 매각 및 교통세 인상으로 각각 2조5천억원과 2천9백억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밖에도 각종 대책에 48조~54조원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추가 자금조달은 고사하고 기왕의 재원조달계획도 제대로 집행될지
의문이다.

당장 오는 6월말까지 1조6천억원의 무기명 장기채를 소화시켜야 하는데
이달 9일 현재 팔린 금액은 고작 3백43억5천만원어치에 불과하다.

초조해진 정부와 여당은 자금출처조사 면제를 홍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에 판매가 부진하다는 분석이 좀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한 예로 지난 93년 지하자금을 산업자금화한다는 취지로 발행된 연리 3%,
10년 만기의 장기산업채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본
셈이다.

세금우대상품은 하나만 허용된다며 중복가입을 취소한다고 소동을 피운
지가 엊그제인데 여당에서 실업대책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또다른 비과세
저축상품 시판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도 중구난방식 대책마련의 또다른 예다.

채권발행외에 세금인상 국유재산매각 등 다양한 재원조달방식의 취사선택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봇물처럼 발행되는 국.공채를 그럭저럭 소화한다 해도 회사채발행이
위축돼 민간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구축효과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한정된 재원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면 구조조정과 실업대책 등 정책의
우선순위를 따져 선별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실업자에 대한 지원보다 일자리 마련이 우선이라면 노동부뿐만
아니라 재경부를 비롯한 경제부처간의 정책조율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돼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