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전 총리가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처음으로 말문을 열였다.

남 전총리는 10일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초청으로 이뤄진 "개혁의 성공을
위하여"란 주제의 특강에서 정책간섭을 최소화하는 조정자(레프리)형 정부
만이 성공적인 개혁을 이끌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보호정책과 특혜, 광범위한 정부규제, 정경유착, 비대한 공공부문
등이 특징인 구체제를 완전히 청산한 뒤 시장원리와 공정경쟁이 강조되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강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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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는 선진국권으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IMF와 채권국의 압력으로 전면적 경제개혁이 추진되고 있는데 그에 따르는
기업인과 근로자의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러나 개혁은 성공할수도 있고 실패할수도 있다.

지난 5년동안 김영삼정부의 경제개혁은 대체로 실패했다는 것이 식자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 정부가 개혁에 성공할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개혁의 성공을 비는 마음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까 한다.

먼저 개혁에 성공하려면 개혁 주도 세력과 정부가 명확한 비전과 목적의식
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할수 없고 즉흥적으로 개혁과제에
도전하다가 그에 따르는 경제적 고난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치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파괴와 구호에 그치는 개혁 아닌 개혁이 되고
만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경제운영의 패러다임(paradigm)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식자들의 일반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면 종래 경제운영의 패러다임은 무엇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관련하여 스위스 IMD의 레흐만(Lehemann)교수의 흥미있는 논문이
있다.

그는 기업, 금융에 대한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을 세가지 모델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관리형(혹은 통제형) 정부.

정부가 민간 경제 활동에 광범위하게 간섭하고 기업의 국가적 챔피언을
길러내기 위하여 각종 특혜와 보호적 정책을 구사하고, 공공 부문의 비중이
크며 정경유착과 부패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그리고 1990년이전의 한국이 이 모델에 속한다
한다.

둘째는 코치형 정부.

정부와 기업의 협력하에 보조및 보호정책을 펴나가고 관리된 경쟁질서를
유지한다.

또 산업과 금융이 유착상태에 있고 관리형 정부보다는 덜 하지만 정경유착
과 부패가 상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과 일본, 1990년이후의 한국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레프리형 정부.

시장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공정거래
질서를 수호하고 위법자를 처벌한다.

금융은 산업으로부터 독립해 있고 정경유착이나 부정 부패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홍콩 등 주로 앵글로 색슨 문화권의 나라가
이에 속한다.

레흐만의 시사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 개혁의 목표가
종래의 정부 주도의 통제형 관리방식에서 민간 주도의 시장형 관리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즉 우리는 지난날 이 나라의 경제개발을 이끌었던 산업 보호정책과 특혜,
광범위한 정부 규제, 정경유착, 공공부문의 비대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구체제를 청산하려 한다.

시장원리와 공정 경쟁이 지배하고 산업과 금융이 서로 독립적이며 부정
부패의 소지가 적고, 모든 경영이 투명화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창출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여러 기회에 말하고 있는 것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이러한 방향과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목표를 국론으로 의식화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고
이러한 목적의식이 투철하지 않기 때문에 개혁 작업이 빗나가고 있는 사례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분적 보완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다시 짜는
개혁에는 엄청난 고통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므로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강력한 리더십이 없으면 그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이 실효를 거두려면 먼저 능률적인 행정조직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구사해야 할 개편된 정부조직에는 문제가 있는것 같다.

한가지 예로 예산 기능이 청와대 재경부 예산청의 3층 구조로 분화되었는데
이것은 앞으로 여러가지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청와대내에 공식기구인 기획.예산위원회가 있어서 거기에서 예산
편성의 방침이 결정될 것인데 동위원회 위원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므로
국회에 나가 질의에 답변하지 않거나 할수도 없다.

따라서 재경부 장관이 위원회와 사정 협의를 거쳤다는 양해하에 대신
답변해야 하는데 위원회가 단순한 자문기관이 아닌이상 행정적, 혹은
정치적으로 조직상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사견으로는 예산기능은 재경부로 일원화하고 그대신 금융에 관한 업무는
대부분 한국은행으로 이양하는 것이 개혁 목적에 부합되는 조직개편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렇게 하더라도 대통령은 얼마든지 재경부의 재정운용을 지휘할수 있고
행정을 보다 간편하게 할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예산기능 3분화는 현 대통령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치적 흥정의 결과로서 그렇게 된 것인데 이것은 정치권의 개혁의 비전이나
목적의식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실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개혁에는 주도세력과 주도기관을 필요로 한다.

개혁의 중심체가 있어야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하나의 시스템
으로서의 개혁 프로그램을 편성할수 있고 그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수가 있다.

그런데 지난번 정부조직 개편에 있어서는 각 부처 경제정책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이 빠져 버렸거나 혹은 분명치 않은 것 같다.

청와대 기획.예산위원회 국무총리실의 국무조정위원회등이 있는데 어느쪽이
조정업무를 맡을 것인지 분명치 않다.

대통령이 정책조정위원회를 두고 그를 주재한다 하는데 그 이전에 문제의
소재와 각 부처 의견을 분석 정리하는 기능이 확립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속단, 혹은 독단에 빠질 우려가 있고 대통령의 직무부담이 과중하여 국정
전반을 조감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

한편 비서진의 비대화, 내각의 무력화, 그리고 국회와의 마찰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

하여튼 지금 정책조정기능이 없이 각 부처간의 보조가 맞지 않는 사례가
크게 눈에 띈다.

이점에 관련하여 재경원의 해체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재경원을 해체한 것은 외환위기를 예방하지 못한 실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정작 잘못은 종전에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친데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두 부처를 합친결과 재경원은 금융업무에 매몰되어 경제 전반의 동태를
파악하여 정책을 기획.조정하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얻는 교훈은 기획조정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은 현업행정을 겸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어쨌든 개혁 업무를 통괄 조정하는 강력한 기능이 필요한데 그것은 현업
행정을 맡지 않고 국회에 나갈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각 부처 장관이 개혁 업무중 자기 부처 소관 사항에 대하여 국회
질의에 답변하고 책임을 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경제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이나 정책 조정에 대한 책임은 개별 부서장에게 물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국무총리가 그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데 과연 총리가 실질적
으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실권없는 총리가 대통령의 방탄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헌정의 전통인데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총리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여튼 개혁추진의 중심체를 두지 않는 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번의 경제개혁이 부분적 보완이 아니라 경제운영시스템을 다시 짜는
총체적 개혁인 만큼 그 설계를 완성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러나 하루빨리 개혁 프로그램의 전모가 완결적으로 제시되었으면 한다.

지난날 정부인수위원회가 1백가지의 개혁과제를 선정하였는데 그것이
정부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채택된 것인지 아닌지 혹은 그밖에 또 있는지
알수가 없다.

최종적 개혁 프로그램이 제시되지 않으면 경제단위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개혁, 개혁하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사업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되고 사업의욕을 잃은 채 사태를 관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개혁 프로그램이 확정,공표되면 그 집행의 진도와 성과를 추적하여
개혁이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국민에게 명료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개혁작업에 대한 신뢰와 협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면 위에서 말한 정책조정과 평가분석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된다.

행정개혁에 관련하여 필자는 가칭 PMS(Policy Monitoring System)를 제안한
일이 있다.

즉 일체의 경제 법령과 규칙의 각 조문을 정책 목적별로 분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컨대 공장용지 매수에 관련된 각 부처의 규제사항을 총체적으로
파악 할수 있고 그것을 놓고 규제완화의 범위를 논할 수 있을 뿐더러 기업과
관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수 있게 된다.

PMS를 개발하면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전모를 총체적으로 파악할수 있고
개혁의 내용과 범위를 정확히 파악할수 있을 것이다.

지금 경제단체와 정부 당국자들은 다같이 규제완화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
규제의 실태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그 시스템의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개혁의 실효를 거둘 수 없다.

하나의 시스템은 그를 구성하는 각 부분이 제각기 제 구실을 할 때에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가 시스템의 구성기관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폐습이 있다.

그 결과 권력이 집중되고 권력자는 문제를 전문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 많은 문제에 매몰되어 전체를 볼 수 없게 되는 반면 시스템
전체의 성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정부나 재계의 권력자 중에는 산하조직의 자율기능을 신장하면 자기의
파워가 약해진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시스템의 파워는 오히려 강화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는 시스템의 구성부분이 자율을 포기한채 구체제의
타성에 젖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특히 금융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러나 금융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이 개혁의 주요목적의 하나이니 만큼
정부는 개혁과정에서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도록
개발하고 훈련하는 도량을 보여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하여 재벌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자면 먼저 금융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금융감독기능을 활성화
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은행으로 하여금 재벌개혁을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시스템의 질서이자 절차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금융감독원은 건전성 확보를 위하여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금융기관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재벌의 구조조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하여 일반적 지침을 주되 재벌에 대하여
직접 조치를 취하는 인상을 주지말고 은행이 자력으로 재벌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금융감독원은 감독기준에 어긋나지 않도록 그 배후에서 은행들을
감시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은행이 재벌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시장규율에 따라 자신이 망하든가
아니면 금융감독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제재를 받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키려면 그에 합당한 질서와 절차를 실천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해야 할 일을 그들이 할수 없다고 하여 자율의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 주지도 않고 그들이 할 일을 정부가 대행하는 일을 계속하면 관치
금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시스템 전체의 성능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개혁목적에 합당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개혁이 빗나갈 수 있다.

또다시 금융개혁에서 예를 들겠는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금융개혁의
근본목적은 (1)금융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2)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며
(3)정부의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작년말 국회에서 13개의 금융관계법(개정 또는
신설)이 통과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중의 일부 입법은 개혁 목적에 부합되는지 의문이다.

예컨대 금융감독원이 금융계의 기강을 바로 잡고 건전경영을 보장하자면
정치적 중립이 필수적 조건이 된다.

은행이 잘못하면 사전시정조치.영업정지.폐쇄 등의 조치를 가차없이 취해야
되는데 만약 감독원이 정치적 영향하에 놓이게 되면 그러한 제재조치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지난날 기아사태가 일어났을 때 각 정당이 저마다 정략적 발언을 하는
가운데 정부의 신속한 처리가 늦어져서 금융파탄과 외환위기를 재촉했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감독기구를 감사원과 같은 헌법기관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 국회에서 의결된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금융감독원 자체는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되어 있으나 금융감독위원회
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2원화되어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를 금융감독원 내부에 두고 두 기관을 단일 무자본 특수법인
으로 했어야 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편 감독원장이 부실 금융기관의 폐쇄를 건의하면 재경부장관은 공청회를
거쳐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이상한 규정이다.

차라리 폐쇄요건을 법으로 명시하고 그에 해당되면 특별한 사유(전쟁,
천재지변 등)가 없는 한 즉각 폐쇄해야 금융의 기강이 설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적 구습 때문에 권력층 내지 공직자의 사적 청탁
으로 금융 경영진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 비추어 금융감독원법에 민영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인사간섭을
법적으로 배제하고 공직자의 융자에 관한 사적 청탁을 처벌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정상적 규정이라 할지 모르나 우리의 현실로 보아 필요 불가결한
규정이라고 생각된다.

부언하건대 금융감독기관은 어떠한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는 동시에
금융기관 경영에 부당한 간섭을 해서도 아니된다.

엄정한 감독이란 반드시 과다한 간섭과 규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몇가지 경영지표를 감시하고 결함이 보이면 가차없이 조치를 취하면
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82~92년동안 1천4백29개의 크고 작은 은행들의 영업
허가가 취소되었는데 이점과 관련하여 미국의 저명한 금융학자 카프만
(Kaufman)교수는 흥미있는 보고를 하고 있다.

즉 미국에서는 감독규제가 많았던 때에 오히려 은행 파탄 건수가 더
많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금자들은 정부가 규제와 감시를 하고 있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방심하는 동시에 은행들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구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프만교수는 금융기관 감독의 요체는 금융기관들이 시장규율
압력하에서 자구노력을 하는 것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규제방식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액 예금을 보호하지 않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이러한 시장규율의 관점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 1996년의 뉴질랜드의
금융개혁이다.

뉴질랜드는 중앙은행의 은행감사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그대신 3개월마다
은행 재무상태를 공시케 하고 그 문서에는 사실과 다름이 없음을 보장한다는
은행장의 서약과 서명을 하게 했다.

만약 허위사실이 발견되면 은행장은 처벌을 받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까지는 할 수 없으나 규제 만능의 사고방식은 개혁의 목적과
배치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개혁의 목적과 방법이 상치되는 또 하나의 예를 들기로 하자.

최근에 은행 주주총회에서 부실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은행들이 대거
재선되었다 하여 정부측에서 불평을 흘린 일이 있다.

그러자 뒤늦게 은행감독원이 개입할 뜻을 비쳤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먼저 금융감독원이 은행장의 귀책사유를 명확히 제시
하고 있어야 했다.

만약 그것이 미리 알려져 있었더라면 주주총회가 그에 저촉되는 인물을
재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주총회가 끝난 후에 정부의 압력으로 주주총회의 결의를 무효화 한다면
주주에 의한 책임경영체제를 만든다는 개혁의 목적과 어긋나는 꼴이 된다.

투명한 질서를 만들지 않고 정부가 형편에 따라 이래라 저래라 하면 관치
금융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기아와 한보등의 부실기업 정리도 마땅히 채권은행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채권은행은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고 정부 당국은 분명한 방침이
없기 때문에 부실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해결의 주체를 채권은행으로 정하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신속한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것이 개혁의 목적과 합치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하도록 만드는 것이 개혁의 목적이다.

그러나 채권은행이 해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못하는 이유는 정부가 간섭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특히 금융기관의 자율을 강조하는 것은 외부반응을 의식하기 때문
이다.

기업체인 금융기관이 자기의 채권관리를 위해 기업에 각종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영업행위이고 정부의 간섭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또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규제를 가하는
것은 세계 공통의 관행이고 이를 불필요한 정부 간섭이라고 보는 국민이나
외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명한 질서를 세우지 않고 정부가 즉흥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정부와 금융과의 손발이 맞지 않고 여전히 경제활동에 정부 간섭이 많다는
국제사회의 인상은 씻어지지 않을 것이다.

IMF 주도의 구조개혁하에서 고환율, 고금리의 충격으로 1만개 이상의
기업이 문을 닫았고 1백50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하였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사태는 심각하다.

필자는 IMF가 금리통제를 풀고 외자조달과 구조조정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쓴 일이 있지만 IMF의 초고금리 정책이 필요이상의 기업파산을 강요
하고 있는 것 같다.

위기관리와 관련,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현실이 제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개혁의 목적과 원칙을 지키고
현실과 타협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개혁 세력과 지도자의 신념과 용기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이점에 관련하여 1984년에 시작된 뉴질랜드의 경제개혁의 후반을 성공적
으로 주도한 국민당 제임스 볼커(James Bolger)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개혁에는 강한 저항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찬성할 때를 기다리다가는 그
기회는 놓치고 만다. 개혁에 성공한 것은 정부가 명확한 목표를 내걸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국민앞에 명백히 제시하고 자신을 가지고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우리 지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개혁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고통을 어떻게 각 계층에게 공평하게 분담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둘째로 과도기적 진통을 완화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대책이 필요한데
거기에는 예외없이 재원염출이 문제가 된다.

외부자원으로는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차관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김대통령의 ASEM 외교성과를 발판으로 하여 G7 국가들로부터도 구조
조정 차관을 얻도록 교섭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자원으로는 국민저축 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몇몇 은행들이 그러한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예금의
계정간의 이동보다 신규예금의 극대화를 노려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실직할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월급의
일정률을 저축하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 자금을 국채로 흡수하여 정부가 추진하는 고용증대사업에 쓸 수 있다.

공공사업은 이 기회에 사회간접 시설을 확대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고 임금
살포에 그치는 취로사업은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공적자금 운용에 있어서는 일석이조를 위하여 "돌려 빼기" 작전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가령 재정자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할 경우라면 단순히 재정 융자에 그치지
말고 국책은행에 증자를 해서 동은행의 자본부채비율(BIS기준)을 올리는
동시에 그 자금으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하게 하면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정부가 취득한 주식은 후일에 주식시장에서 팔수도 있다).

중앙은행 자금도 은행에 직접대출하는 것보다 1차적으로 성업공사 또는
토개공에 가도록 하고(법상 한은 대출이 불가능하나 정부기채 또는 금융기관
을 통해 전대 형식을 취할 수 있다) 성업공사 또는 토개공이 부실채권 또는
부동산 매입을 통하여 금융기관에게 자금이 가도록 하면 1석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협력없이 개혁성공은 불가능하다.

당략을 초월하여 개혁에 필요한 입법 조치만은 신속히 처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각 당은 개혁의 비전과 목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점과 관련하여 뉴질랜드의 정당정치를 배울 필요가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에도 개혁의 고통은 적지 않았다.

실업률이 12%에 달하였고, 환율을 자유화하자 외국자본 유입으로 뉴질랜드
달러가 평가절상됨에 따라 수출이 타격을 받고 91년의 불황을 격화한 일도
있었다.

국민들의 불안감과 기득권세력의 반발때문에 집권정당이 의석을 크게
잃기도 했다.

그러나 주목할 일은 여당과 야당의 정권교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개혁을 일관적으로 추진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치권도 제발 당리 당략을 위한 당쟁은 그만하고 나라 문제를
걱정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구국적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
하다.

< 정리=김수언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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