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미 하바드대 교수는 IMF가 구제금융을
주는 댓가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이행조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IMF는 개별국가에 걸맞는 보다 현실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IMF가 한국에 요구한 경제 개혁이나 금융긴축 정책들은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말하고 이런 점들이 IMF의 신뢰성
을 떨어뜨리고 있는 만큼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펠드스타인 교수가 "아시아 통화위기와 IMF의 오진(Refocusing the IMF)"
이라는 제목으로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지 최근호(4월호)에 쓴 글을
요약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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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구조개혁과 제도개혁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게 분명하다.

구조개혁보다는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경상수지 대책을 조언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필요하다.

IMF는 이미 라틴아메리카 등 여러나라에 구제금융을 지원했으나 개별국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이고 형평성을 잃은 조건을 부과했다.

이로인해 자금을 지원받은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오히려 장애를 겪었다.

특히 한국 등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된 일련의 정책권고를 보면 이는
IMF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도 그리 좋은 진행과정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IMF는 지난 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통화위기 당시 증세, 재정지출 삭감,
국내소비억제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권고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당시의 성공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같다.

통화위기를 겪고 있는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성공에 고무돼 그때보다 더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재정과 금융긴축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회경제적인 구조개혁까지 이행조건
으로 내놓았다.

이는 지원자 또는 조언자로서의 권한과 지위를 넘어선 것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상황을 더욱 나쁘게 몰아가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선택이다.

한국은 라틴아메리카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한국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원화의 고평가와 대폭적인 경상적자에만
돌릴수는 없다.

90년대들어 한국경제는 80년대와 마찬가지로 연평균 8%의 성장을 이뤘고
물가상승률은 5%를 밑돌고 있었다.

물론 반도체 가격의 급락으로 95년 GDP의 1.7%였던 경상수지적자가 96년에
4.7%까지 늘어났다.

일부 중견그룹이 도산하고 시중은행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기업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런 한국이 갑자기 위기에 빠진 것은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이 외환
보유고보다 훨씬 많은 단기자금을 빌려쓴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것도 총외채의 규모보다는 외채의 구조가 문제였다.

한국의 총외채는 GDP의 30%에 불과하지만 단기채무가 1천2백억달러에
달해 일시적인 유동성부족에 몰린 것이 위기의 원인이다.

이런 사정은 한국의 경우에는 멕시코 등 남미국가와는 전혀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말해 한국에 대해서는 정부지출을 삭감하고 세율을 인상하며 금융을
초긴축으로 몰아가는 IMF의 전통적인 정책수단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시급하고도 절실했던 것은 오히려 채무구조의 개선을 위해 채권은행들이
지불기한을 연장해 주고 지급이자에 상당하는 금액의 신규융자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IMF는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대신 한국경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경제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개혁을 조기에 단행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기업 주식의 50%이상을 외국인이 취득할수 있도록 허용하고,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며, 수입다변화제도를 폐지하고, 은행구조를 개편하라는 요구를
내놨다.

또 중앙은행의 독립을 확보하고, 금융감독기구를 정비하며, 재벌을 개혁
하고, 근로자들의 정리해고를 허용하고 했다.

기업의 높은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라는 주문도 들어 있다.

문제는 IMF가 이렇게 어렵고도 민감한 경제문제들에 대해 관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태도인가 하는 점이다.

IMF는 자금지원에 상응한 다양한 이행조건을 내걸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
까지나 특정 국가가 위기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또다시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특히 IMF가 경제구조의 개혁에 대해 조언할 때는 그 조언은 당사국이
국제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필요한 분야에 국한돼야 한다.

당사국의 관할 영역에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기술적인
조언에 한정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지원대상국에도
똑같은 유형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IMF가 작년 12월초 한국측에 제시한 구조개혁안들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항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고 금융시장에서 다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때는 대부분이 시급성이
떨어지고 또 불필요한 것이었다.

더우기 개혁안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들 뿐이었다.

노동시장의 룰을 뜯어 고치라거나, 기업들의 재무구조나 기업지배와 관련된
관행들을 개편하라는 등의 요구는 어느 나라에서도 단시일내에 수용할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정부와 민간기업의 관계를 재정립하라거나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 추진
하라고 제시한 방안들도 대부분 한국정부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 두어야 할
사항들이었다.

물가상승률이 불과 5%에 머물고 있는 나라에 대해 초긴축정책을 요구
함으로써 은행들의 대출금리를 무려 연 30%로 올려 놓은 것도 잘못된 부분의
하나다.

이런 고금리로는 한국기업 전체의 부도리스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도산이 늘어나면 금융기관의 부실이 확대되고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다시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고통을 받을 바엔 한국은 고금리보다는 오히려 원화절하를 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은행들에 대해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강요
함으로써 신용수축(크레디트 크런치)을 유발한 것은 큰 문제였다.

이로인해 기업들의 도산이 초래됐으며 기업도산은 다시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최근 일본정부는 국내의 크레디트 크런치를 피하기 위해 BIS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음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IMF의 구조개혁안중 상당부분은 일본과 미국이 오랫동안 한국에게 압력을
가해온 시장 개방정책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

무역장벽의 철폐와 자본시장 개방확대가 대표적인 예다.

특정 일본상품 수입을 금지하는 수입선다변화제도를 없애게 한 것이라든지,
외국인에 대해 한국기업의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를 허용토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이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IMF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

IMF가 한국과 동남아시아에 대해 여러가지 이행조건을 강요하는 것을
보면서 말레이시아 등 다른 나라들은 IMF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리게 됐다.

이는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국제금융질서를 안정시킨다는 IMF의
원래 사명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 정리=홍찬선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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