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그룹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의 방만한 투자와 불합리한 경영관행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인식에서다.

하지만 기업구조조정이 "경제논리"에 근거를 두지 못하고 있으며 인기
영합적이라는 지적이 적지않다.

일본내 한국경제통으로 잘 알려져있는 핫토리 다미오 도시샤대 사회학과
교수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한국의 경제구조개혁은 전체적인 장기비전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돼야하며
재벌이 주가 돼선 안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기업의 계열사정리도 "살아남기 전략"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추진돼야하며
비서실해체 등 다른 기업구조조정요구도 법적근거위에서 시행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 열린 "한국 경제동향과 재벌의 행방"세미나에 참석하기위해
도쿄에 머무르던 핫토리 교수를 만나 한국의 경제개혁방향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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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개발시대의 산업정책과 산업조직은 사회적 전통에 따라 탄생한
것이다.

초기에는 자원 기술 자본부족이라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작동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비효율적으로 변해 버렸다.

재벌중심 경제구조의 역기능이 갈수록 커지고 만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기업 및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이권구조로 바뀌면서
일어났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시대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한 것도 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구조개혁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에는 재벌의 과다한 차입금에 의한 과잉투자가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소외계층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들을 달래기
위해 재벌개혁작업에 나서고 있다"

-새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벌의 계열사 수를 3~4개나 5~6개로 대폭 축소 조정하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대경영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재벌이 책임을 져야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문제는 어떻게 해법을 찾아낼 것이냐는 점이다.

계열사수를 3~6개로 줄이겠다는 근거를 이해하기 어렵다.

법적근거가 없다.

정부의 정책이 어떤 곳을 지향하고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구체적인 스케줄이 마련돼 있지않은 것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벌이 대책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개혁의 틀이 우선적으로 확정돼야 한다.

그런다음 단계적인 전략을 마련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재벌개혁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재벌개혁은 정치논리가 아니라 경제원칙에 입각해 추진돼야 한다.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위기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계열생산체제를 구축해 왔다.

반면 대만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한 네트워크형성을 통해 성장을 지속해
왔다.

대만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립형공업화를 지속했으면서도 위기를 겪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해서 재벌이 있으면 안되고 중소기업이 있으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만은 재벌이 없어서 위기가 일어나지 않고 한국은 재벌이 있어서 위기가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이 대만식 경제구조를 갖춘다고해서 경쟁력을 곧장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어떤 점이 문제인가.

"지난 3개월동안 외국인 소유주식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대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외국인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의 주식소유한도규제완화로 경영의 국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재벌기업의 계열화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

최근 도쿄대 경제학부내에 있는 한국자동차산업연구회는 한국자동차회사의
계열화가 유지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계열기업간 상호출자가 규제되면 계열화도 무너지게 될것이다.

법적인 테두리안에서 경제문제를 풀어나가는게 순리라는 얘기다"

-대기업그룹들이 기획조정실이나 비서실을 폐지한데 이어 계열사정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인가.

"법적근거가 없는 비서실 기획조정실 등을 폐지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전경련이 그룹의 업무조정 등을 위해 지주회사의 설립을 인정해줄 것을
정부당국에 요청한 것으로 안다.

합법적으로 조직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계열사정리는 재벌들이 살아남기전략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정부의 눈치를 보고 추진할 사안은 아니다"

-한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힘을 쏟아야할 것이 있다면.

"명실상부한 경제구조의 개혁이다.

재벌개혁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치논리에 의한 재벌개혁으로는 또다시 경제위기를 맞게될 가능성이
있다.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는 재벌의 강점이 절대로 필요하다.

예를 들면 결단의 신속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오너가 또다시 경영의 일선에 나서 직접 계열사를 챙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계열사간 상호의존관계도 계속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제를 계속 해결해 나가면서 강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새정부가 추진해야할 경제구조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달라.

"단타위주의 인기영합적 대책으로는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정부 학계 기업간에 깊은 논의를 거쳐 우선 한국경제의 장기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이같은 장기비전을 바탕으로한 재벌개혁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인 수단을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경제가 언제쯤 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나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한국경제의 회생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1년동안은 단기채무 상환을 위해 어려움을 겪기는 하겠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동안 한국경제가 쌓아온 인적자원을 비롯해 설비, 기술,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경제구조가 개혁된다면 먼 장래로 볼 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

[[ 약력 ]]

지난 71년 도시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아시아경제연구소에 들어간 이후
계속해서 "한국경제"라는 한우물만을 파왔다.

아시아경제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지난 77년부터 1년동안 서울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기업-사람과 경영" "한국의 공업화-발전의 구도" "한국의
경영발전" "한국의 네트워크와 정치문화" "한국 대만의 발전메커니즘" 등
수많은 한국관련 저서를 펴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