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편성지침이 나왔다.

3월말까지 중앙관서의 장에게 예산편성지침을 시달하도록 돼있는
예산회계법에 따라 매년 이맘때면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첫 예산편성이라는 점,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세입확보는 불투명한 반면 실업대책등 재정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획예산위원회는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내년 경제를 <>성장률 2~3%
<>물가상승률 5% <>국제수지는 흑자로 전망, 각 부처에 대해 예산요구액
자체를 올해보다 10%이상 늘리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지침에 나오는 이런 숫자는 경제전망의 불확실성이 지금처럼
크지않았던 해에도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내년 예산이 다음 몇가지 기본적인 원칙아래 편성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글자그대로 제로 베이스예산이 돼야한다고 본다.

전 정권에서 편성한 예산에 반영됐던 계속사업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대통령선거공약 인수위가 발표했던 1백대 국정과제도 원점에서 타당성을
철저히 다시 점검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그 어느때보다 경제논리에 따른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요구하고 있고, 여기에는 재정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인 선거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인식돼야할 명제다.

예컨대 그린벨트문제만해도 그렇다.

국민회의의 대통령선거공약이었고 그래서 당쪽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그린벨트매입"에 대해 설혹 당위성을 인정한다한더라도 재정여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타당한 일인지, "공약"에 얽매이지 않는 냉정함이 있어야 한다.

예산편성에 정치논리가 작용할 가능성은 어느 때나 있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그럴 개연성이 더하다는 점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어느 때보다 정치인장관이 많은 행정부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정치우위의
기류, 세입전망과 세출수요간 불균형에 따라 "힘"이 작용할 여지는 더 커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새 여당의 지나친 의욕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새해 예산이 꼭 균형예산이 돼야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이 그 어느때보다 긴요한 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업대책을 위해서도 재정에 대한 관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적자규모가 엄청난 미국 등 일부 선진국 재정운영이 잘됐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경기가 바닥을 기고있는 상황에서 공공투자를 억제하는 긴축재정이
반드시 능사일 수는 없다.

대형 사회간접자본투자라면 그 혜택을 볼 다음 세대도 부담을 함께하는
것이 따지고보면 당연하다.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도 그렇고, 사회안정을 위해서도 새해 예산은
우선적인 목표를 경제개발관련 세출을 가능한 한 늘리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는데 둬야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