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달간 우리는 미증유의 외환위기와 금융공황을 겪었다.

아직도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기는 하나 점점 고금리 고환율 저성장에
길들여지고 있다.

국내경제에 대한 신뢰도 상실로 자본이 빠져나가면 금리와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투자가 위축되며 이를 반영, 성장이 크게 둔화되고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이게 된다.

지난 몇달동안 우리는 정확히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면서 신뢰도와
해외자본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제 외환위기의 조기대응이 마무리된 지금 우리 경제의 안착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수행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12월 구제금융제공과 동시에 각종
구조조정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 2~3%, 물가상승률 5%,
경상수지 소폭적자로 전망하더니 두달도 안돼 경제성장 1%이하, 물가상승률
9%, 경상수지흑자 80억달러로 전망치를 수정하였다.

수정전망도 믿을 수 없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 마이너스 1%, 물가상승 10%,
경상흑자 2백50억달러로 전망하였다.

날이 갈수록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투자와 수입위축의 대가로 경상수지흑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도 저하와 외채상환압력을 감안할 때 올해 고금리와
마이너스 성장및 경상수지 대폭 흑자는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연 20%를 넘는 금리와 1천6백원을 넘는 환율로는 원활한
구조조정과 경제안정을 도모할 수 없음을 정부와 국제통화기금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설득력있는 정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올해 경제전망에 대한 책임있는 수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검토돼야 할 것은 국제통화기금의
긴축프로그램이다.

국제통화기금의 긴축프로그램이 실시될 때부터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고금리와 고환율로 경제를 경착륙(hard landing)시켜
대규모 경상흑자를 내고 이돈으로 외채를 갚게 하기 위한 것일 뿐
경제안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자금을 지원받은 대부분 국가들은 첫해에
국제통화기금의 전망보다 훨씬 더 극심한 마이너스 성장과 대폭적인
무역수지개선을 경험하였다.

마이너스 성장이 첫해로 끝난 국가도 있었으나 많은 나라들에서 이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져 결국 외채상환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국제통화기금은 향후 금리를 낮추어간다는 데에는 합의했지만 환율이
안정돼야만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확산으로 자본이 빠져나갈 때 긴축정책으로
금리를 더욱 상승시키는 정책이 환율안정과 경제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지나친 고금리로 구조조정이 지장을 받고 경제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여 자본유입도 지체되고 있으므로 환율이 안정된 후 금리를
낮출 것이 아니라 금리와 환율의 동시안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시행된지 석달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그 성과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하반기까지 기다려보고 긴축정책을 수정하기에는 너무 늦다.

최근 미국 재무부의 립튼 차관이 앞으로 한달이내에 원화환율이 안정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내달에도 금리나 환율의 안정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금리를 낮추고 긴축을
완화하여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먼저 부실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을 빨리 정리하여 경제구조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실정리의 재원은 재정긴축과 통화의 신축적 운용으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40조원의 부실채권을 정리하려면 간단하게 계산해 매년 약 7조원의
이자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자비용은 통화를 풀어서 국민에게 부담하게 할 수도 있으나 더 좋은
방법은 정부개혁을 통해서 필요없는 정부지출을 7조원정도 줄이는 것이다.

정부가 사회간접투자를 줄여 재원을 마련한다면 매년 사회간접투자를
줄여야하나 정부조직의 축소와 효율화를 도모한다면 한번의 개혁조치로
지속적으로 예산을 절감함으로써 구조조정비용을 거뜬히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통화당국은 경제위기시 높은 금리로 통화를 흡수하는 동시에 흡수된
통화를 다시 적재적소에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는 배지홀(Bagehot)의 법칙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금융경색완화및 부실기업정리에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국제통화기금과의 협약 때문에 환매채 금리를 시중실세금리보다
높게 유지하고 있다.

이때 높은 환매채금리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입된 자금을 이용하여
중앙은행이 직접 위기타개에 나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국내기업들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만큼 과감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정책과 공기업 민영화, 인수.합병의 활성화, 국내부동산투자 자유화로
자금유입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