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이후 소비절약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아나바다"운동이 국민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동안 지나친 과소비와 과시소비가 현재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중
하나였기에 이를 반성하는 동시에, 나라가 어려울 때 건전한 소비풍토를
조성하자는 좋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우려의 눈초리로 우리를 보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소비절약운동을 수입품 배척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외국의 시각은 결과적으로 통상마찰을 야기시켜 우리 수출을 어렵게
하고, 외국기업의 대한투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될까 우려된다.

최근 미국의 데일리 상무장관과 로스테드 주한EU대사는 우리 정부에
"한국의 근검절약운동은 수입품을 거부하는 정서를 형성하며 이는
자유무역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리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요청했다고 한다.

미 의회에서도 "한국의 소비절약운동은 소비자들이 외국상품, 특히 자동차
담배 등을 구매하지 못하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피셔 미 USTR 부대표도 "한국은 미 의회내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일어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수입차협회에서도 수입차에 대한 적대적 차별행위 사례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면서 이러한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왜 이처럼 우리와 외국인 사이에는 인식차이가 존재하는가.

필자는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아직 국제화시대에 걸맞은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 탓으로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외세침략을 많이 받아온 데다가 단일민족이라는
특성 등으로 인해 우리와 남을 구분하며,외세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배척하는
심리가 잠재해 있는 편이다.

또한 어떤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에 치우치기 쉽고 우리
편에 대해서는 배려하나 남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외국인들은 최근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경제식민지 시대, IMF의 신탁통치, IMF체제 극복" 등의 용어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은 IMF가 한국의 외환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은 마치 IMF가 한국경제를 점령하고 있는 듯이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온갖 뉴스가 같은 시간에 전파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CNN등 각종 매체의 2백여명에 달하는 특파원들이 상주하고
있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경제상황뿐만 아니라 정치행태, 문화, 일반국민들의
행동이나 정서까지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들 언론매체의 힘은 대단하며,우리의 대외이미지와 신인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의 한 골목에서 누군가가 외제차에 못자국을 냈고, 주유소에서
주유를 거절했으며, 운전자에게 욕설을 했다더라" 하는 사소한 일들이 해외
주요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있다.

우리가 사소한 일이라고 간과하고 있는 이런 사례들로 인해 한국은
수입품을 배척하는 나라라는 오해를 사게 되고 통상마찰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외국인을 차별하는 듯한 분위기가 외국투자유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국민은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은 적극 환영하면서도,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에 대해서는 "기업사냥"이니 "국내소득의 해외유출"이니 하며 경계의
눈초리로 보곤한다.

해외기업의 국내투자부진은 제도상의 문제도 있으나, 내외차별적인
국민정서도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 정부는 외제차를 타는 사람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적이
있었는데, 이에따른 이미지 추락을 회복시키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러한 과오를 다시 되풀이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개혁을 진행중이다.

유념할 것은 외형적인 개혁도 중요하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내면적인 개혁,
즉 의식과 행동의 국제화라고 본다.

우리는 외국과의 무역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며 이웃과의 협력없는 발전은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진정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