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우리 경제에 왜 갑자기 IMF시대가 초래되었는가에 대해 이미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부가 금융및 외환위기가 심화되고 있는데도 사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IMF 구제금융을 부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나치게 차입에 의존한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방만한 과잉투자에
있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그동안 우리 대기업들은 대마불사신화에 사로 잡혀 수익성 위주의 실속
있는 사업보다 그룹의 덩치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이것이 가능할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재벌간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잘 길들여진 금융기관
때문이었다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도 밝혀진바 있다.

6.25이후 최대의 시련이라고 하는 국난을 맞아 혹자는 정부를 탓하고,
혹자는 은행을 탓하며, 혹자는 대기업을 탓하고, 혹자는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모두 일면의 진리가 있지만 기업의 재무관리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투자결정이 도대체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어떻게
이루어졌기에 이렇게 참담한 기업의 실패는 물론 국가 경제의 파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통탄하지 않을수 없다.

과연 우리 대기업에 투자의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할수 있는 지식이나
기법을 갖춘 인재가 없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러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있어도 우리 재벌의 구조나 기업문화가
이러한 기법이나 인재의 활용을 방해했기 때문인가.

언론이 전하는 기업의 내부사정을 보면 우리 대기업들의 투자실패는
무엇보다 과학적 분석에 의한 합리적인 투자결정이 아니라 소위 재벌
오너들의 의지나 직관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 IMF 관리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각계각층이 우리 사회의 비효율
구조를 뜯어 고치겠다고 나서고 있는 가운데 재벌의 구조개혁에 대한
주문과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벌그룹 경영의 투명성을 위해 결합재무제표의 작성,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 비서실 또는 기획조정실의 폐쇄 등도 필요하지만
그룹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 재량권을 가지고 경영하게 될 개별 기업들이
최고재무담당자 곧 CFO(Chief Financial Officer)의 중요성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최근 매킨지 내부보고서에서도 한국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지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의 CFO 기능을 확보해야한다고 권유하고 있다.

CFO는 기업의 재무기능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며 최고경영자인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최고위 경영자중 한 사람이다.

CFO는 휘하에 신규투자, 인수합병, 사업매각 등 투자전략을 기획하는
부서와 투자자및 채권자와의 관계, 기업의 이자및 환율 위험관리 세무관리
등 자본조달 활동과 운전자본 관리를 맡는 부서, 그리고 기업의 내부활용및
외부보고를 위한 회계와 감사활동을 맡는 부서를 총괄적으로 관장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금융 분야의 기본적 지식은
물론 기업가치를 창출할수 있는 새로운 투자안을 발굴해 평가하고,
인수합병후의 구조조정, 투자자 관리, 성과보상 등에 관한 능력을 두루 갖춘
재무전문가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무기능이 단순히
배후에서 핵심사업의 금융을 지원한다는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기업
가치창조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기업의 재무관리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는 CFO는 새로운 가치 창조가
가능한 영역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그것을 분석해 실현가능성을 평가하며
기업의 최고경영자인 CEO가 투자및 자본조달에 관해 올바른 정책판단과
결정을 할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

더 나아가 CFO는 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목표에 비추어 성과가
달성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평가하며, 결과에 합당한 피드백(feedback)을
그 분야의 담당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재무기능의 최고책임자인 CFO에게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권한과 책임을 줄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최고경영자인 CEO가 기업의 투자및 재무활동에 관한 CFO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할때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그 누구하고도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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