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기초는 탄탄하므로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만 넘기면 1999년부터는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이번 위기는 그 원인이 구조적인데 있기
때문에 제대로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필자의 생각은 이번에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경제회생이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경제난국의 기본원인은 우리경제와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있으며,이는 환율하락등 일시적인 가격요인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화가치가 하락해 가격경쟁력이 회복되고 수출이 잘 된다고 해서 그것이
지속적인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임은 중국등 우리 주변의
경쟁국을 생각하면 금방 알수 있다.

적어도 5년전부터 많은 연구자들이 한국경제는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의 저항때문에 개혁을 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금융시장 노동시장 정부 재벌등 4대개혁과제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혁을 하나만 지적하라고 하면 그것은 당연 금융개혁이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바로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데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은행이 자기자본과 맞먹는 규모의 자금을 하나의 부실기업에
빌려줄수 있는가.

종금사등 많은 금융기관들이 어떻게 그와같이 무분별한 단기 해외차입을
할수 있으며, 리스크가 높은 곳에 빌려줄 수 있었는가.

이번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무책임한 은행경영진및 이를 조장해온
정치권과 재무관료들에게 있다.

그런데 과연 은행의 경영진이나 관료들이 지난 3개월간 어떤 행동을
보여왔는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의 경제위기는 성수대교의 붕괴와 비슷한 사태로 이해할수 있다.

그동안 해왔던 잘못된 관행이 누적되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시스템이
와해된 것이다.

성수대교의 붕괴로 인해 감리제도 개선등 일부 관행은 고쳐졌으나, 과연
한국의 건설업계는 얼마나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하게 되었는가를 한번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의 경제 실패에 대해 법적인 조치나 정치적인 조사, 또는 언론의
피상적인 분석이 아닌 객관적인 분석이 나와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홍콩의 어느 컨설팅회사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행정서비스수준이
아시아 12개국중 11위라고 한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료시스템이 그런대로 우수하다고 믿었던 우리에게는 크나큰
충격이 아닐수 없다.

한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가장 우수한 인력들이 고시 등을 통해
고위공무원의 길을 택하고 있는데, 우리정부는 왜 아시아국가중에서
형편없는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까.

어느 조직의 제품 품질이 형편없다면 사원의 자질이 뒤떨어져 그렇거나
또는 시스템이 잘못되어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서비스 질이 나쁘다면 이는
시스템이 잘못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무원들이 자기일을 열심히 하면 제대로 보상받는 평가및
보상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임용만 되면 웬만해서는 해고되지도 않고 일생이 보장되니
구태여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무원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없이 정부개혁을 제대로 할수 없음은
분명하다.

정부 부서를 통폐합하는 수준의 조직개편으로는 복지부동의 병폐를
없애지 못한다.

몇가지 개혁안을 생각해볼수 있다.

우선 고시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일단 모두 같은 수준에서 출발해 연공보다는 업적과 성과에 의해
진급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고시만 합격하면 어느 정도 일생이 보장되는 그런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다음으로 국장급이상등 일정한 고위직은 계약제로 하고 물론 연봉제로
해야할 것이다.

일정한 기간의 임기동안 목표를 정해 이를 제대로 달성하느냐의 여부에
의해 계약이 갱신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대로된 공무원 업적평가제도가 도입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감사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혁신하다가 실패하는 공무원이 상을 받도록 해야하는데 오히려 이들을
처벌하면 공무원들은 위축되기만할 것이다.

한국경제개혁의 핵심과제는 금융개혁이다.

그러나 금융개혁이 성공하려면 정부개혁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관료들이 계속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들면 아무리 금융제도를
바꾸어도 금융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관료들의 행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고시에 합격해 핵심부서의 과장을 거치면 일생이 보장되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한 금융개혁은 성공할수 없을 것이다.

금융개혁이 제대로 되면 재벌개혁은 저절로 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수십년간 내려온 관료들의 기득권이
우선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공무원제도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