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 <서울시립대 교수>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기존의 법적 구조에 변경을 가하는
것을 널리 구조조정 또는 재편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도산한 기업의 회생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대개
정상적인 경영상태에서 미래의 지속적인 성정과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치열한 경쟁여건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고도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바로 구조조정인 것이다.

어느만큼 다양하면서도 합리적인 구조조정 수단들을 법제도적으로 마련해
주고 있느냐는 이제 그 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된다.

때문에 이에대한 법적 규율 정비는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대부분 국가들이 자국 기업들로 하여금 국제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구조조정 수단들을 마련하고 여기에다 강력한 세제상 혜택까지 주고
있다.

1994년 독일 기업재편법및 기업재편세법이 그렇고, 작년 6월 개정된
일본 상법의 합병관련 부분이 또한 그러하다.

그동안 기업현실에 부응하는 능동적인 법개정 한번 변변히 못하고 대부분
일본의 그것을 답습하기에 급급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대한 법제도 정비는
매우 시급하다.

다행히 보도에 의하면 이에대한 관련법령, 특히 상법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촉발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와관련,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구조조정에 관한 상법상 규율은 효율성과 정의를 조화시키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말해 구조조정을 통해 얻는 기업이익과 이로 인해 침해되는 출자자와
기업 채권자의 이익을 균형시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위와 같이 기업이익으로서의 효율성과 정의로서의 출자자와
채권자의 이익을 조화시키더라도,적어도 구조조정수단의 범위에 관한한
효율성에 보다 무게가 실려야 한다.

즉 먼저 가급적 많은 구조조정 수단을 허용한 후 차후 문제로 관여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공평하게 조정한다는 기본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구조조정법 자체의 목적이 기업들에 경쟁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재편
수단들을 마련해 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상법이 알지 못하는 분할이라든지 주식교환 등과 같은
재편수단들을 가급적 포함시켜야 한다.

셋째 구조조정에 대한 상법상 규율은 가치 중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국민경제상의 독과점의 위험 유무는 다른 법령에서 판단할 일인
만큼 미리 상법이 이에관한 고려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넷째 이러한 기업의 구조정을 실효성 있게 하려면 반드시 세제상의
뒷받침을 해야 한다.

즉 국제규범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과감하게 과세이연이나
경감혜택을 주어야 한다.

당장에야 세수에 지장이 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큰 세원을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재벌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상법 개정 방향이다.

본래 법적으로 보면 독립된, 그러나 경제적으로 보면 하나의 단일체인
고도로 강화된 기업결합형태가 재벌인데,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겸유한다.

이번 상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특히 그룹기획조정실 내지 회장 비서실을
철폐하면서 총수를 "사실상의 이사"로 간주하여 경영상 책임을 지우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발상은 EU의 제9지침안(콘체른 지침안) 제9조가 택하고 있는
"사실상의 업무집행인"에서 유래한다고 보여지는데, 아직 그 상세한
내용을 알수는 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즉 이들을 그 영향력하에 있는 계열회사 이사로 간주하더라도 현행법
체계상으로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 회사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와 같은 강력한 책임원리가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한외에 그나마 있는 상법 제399조나 제401조의 손해배상책임마저
우리 판례가 이를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재벌에 대한 상법상 이해조절의 시작일뿐 근원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주식 양도와 자본 다수결의 원리가 원칙적으로 보장되는 상법 체계상
재벌 형성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면, 논란은 많겠으나 재벌을 "있는 현실"로
긍정하여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 - 물론 이를 위하여는 경제정책적인
시각에서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의 지주회사 설립금지의 고리가
먼저 풀려야 하겠지만 - 하면서 이로인한 폐해를 막는 보다 강력하고도
정교한 책임장치를 상법에 강구하는 쪽으로 해결가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