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가장 시급하고 가장 과감한 개혁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과외비는 고비용과 생활고의 근원이다.

그러면서도 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열악하여 이것이 저효율을 유발하고 있다.

기쁘고 편안해야 할 자녀교육문제가 고통과 짜증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의 천민화에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훌륭한 사회생활인을 양성하는 시민교육이 아니라 자녀들
을 출세시키려는 출세교육이며, 출세시키려면 명문대학에 들어가야 하며,
명문대학에 넣으려면 수능성적이 좋아야 하며, 수능성적을 잘 받으려면
과외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현실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

우선 국민교육의 기틀이 되는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학원화하여 중.고등
교육이 절름발이가 돼 있다.

수능시험과 관계가 없는 과목들을 누가 공부하겠는가.

그래서 제2외국어와 같은 많은 과목의 교육이 죽어가고 있다.

창의교육은 사라지고 달달 외우는 암기식교육이 주류를 이룬다.

가정에서는 사교육비 부담이 생활고와 사회불안의 근원이 돼 있다.

그뿐인가.

과외를 시킬수 없는 시골에서는 자녀들을 가르칠수 조차 없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게 하여 전체인구의 45%를 수도권에 모아 놓지
않았는가.

이제 전면개혁이 불가피하다.

과외시킬 필요가 없도록 하는 개혁, 중.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킬수 있는
개혁, 암기교육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개혁, 지방학생이나 저소득층이 소외
되지 않도록 하는 개혁, 그러면서도 교육의 질을 높일수 있는 개혁을 추진
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적 모순이 워낙 깊은데다 교육문제는 전체 국민들의 이해가
민감하게 얽혀 있어 개혁에 대한 기득권층의 저항이 매우 크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개혁에는 발상의 전환과 강력한 개혁의지가 필수적이며 박정희
정권하에서 중.고등학교 평준화를 밀어붙인 그러한 혁명적 발상이 아니고는
한치도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세가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입시제도를 현재의 수능성적중심으로부터
고등학교 학업성취도(내신성적)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 대학입시 총점 가운데 내신성적 비중은 5%에 불과하며 95%는 수능
성적과 논술고사로 돼 있다.

이것을 3년간의 단계적 계획아래 내신성적(과외활동에 대한 평가 포함)과
필기고사의 비율을 일반고등학교의 경우 50대 50으로 바꾸는 것이다.

대학입시는 대학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 경우에도 이러한 내신성적 반영비율을 의무화해야 할것이다.

이때 내신성적에는 학교별 차이를 두지 않는다.

다만 특수목적 고등학교나 실업고등학교의 경우에는 그 비율을 조정한다든가
하는 별도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1백명중 같은 1등이라 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학교와 시골에 있는
학교의 학생을 똑같이 평가할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것이다.

두사람의 유전자는 그 우열이 같다고 평가해야 할것이며 두사람 사이의
수능성적차이는 잠재능력차이가 아니라 후천적 환경과 개발의 차이일 것이다.

국민교육의 주목적은 자라나는 2세들의 잠재력을 개발하는데 있는 것이며
이미 이루어진 개발의 정도나 환경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러한 후천적 환경차이는 수능성적이 갖는 나머지 50%의 비중으로 충분히
보상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서강대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 등 많은 대학의 실증적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즉 대학입학후의 학업성취도는 수능성적과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반비례하는
관계인 반면 내신성적과는 긴밀한 비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년간의 교단경험을 통해 필자는 과외를 많이 하고 수능성적이
높은 서울학생들은 입학후 공부를 지겨워 하고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반면
내신성적이 높은 지방학생들은 입학후 성적이 계속 오르는 추세를 확인
하였다.

다음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대학의 정원을 당장 완전 자율화하여 대학의
문을 넓혀주고 질과 양의 자율경쟁체제를 유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사교육비 부담이 없어질 것이므로 이를 교육세로 흡수하여
사회적 교육투자로 활용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 중앙대 교수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