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기 제기능을 충실히
발휘할 때만 컴퓨터의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대부분의 시스템도 위의 두가지 구성체로
나눌 수 있으며,어느 한쪽의 기능이 앞서 있어도 다른 쪽의 기능이 따라가지
못하면 앞선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도 자명하다.

또한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기본순서이며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국가도 분명히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 국토 산업시설 등이 하드웨어에 속한다면
국가경영으로 표현될수 있는 정치 경제 문화 등은 소프트웨어와 관련지을수
있다.

여기서 범위를 더욱 좁혀 국가 경제만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면 생산에
직접 관여되는 노동자와 생산설비, 자본을 공급하는 금융기관, 물류를
담당하는 철도 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을 하드웨어로 분류할수 있다.

이들을 서로 연계시켜 생산을 극대화하고 이를 지원하는 회사경영과,
조세 환율 무역 등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소프트웨어라 할수 있겠다.

이렇게 우리경제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분리해서 생각하면 이번
IMF사태는 어느쪽이 문제였는지 자명할 것이다.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 한창
논쟁을 벌일 때 "우리나라는 문제없다"고 주장한 측이 내세운 근거는
"우리 경제는 기본(fundamental)이 튼튼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졌었던 것같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외환위기는 오고야 말았다.

그들은 우리경제의 하드웨어만 보았고,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산업설비는 지난 수년동안 자동화와 현대화가 상당히
진전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선진국수준에는 미흡하지만 잠재력은
상당하므로 하드웨어의 기본은 튼튼하다고 볼수도 있다.

반면 우리의 경제 소프트웨어는 어떤가.

올림픽 이후 무역적자가 계속 확대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원화
평가절하"를 적절히 유도하지 못하여 원화와 달러화의 구매력차이를
엄청 벌려놓고 말았다.

이 구매력차이 때문에 수출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이든 수입만 하면 큰 이득을 남길수 있어, 심지어는 제조회사들까지
자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제품을 수입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어디 이 뿐인가.

해외여행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되어 너도 나도 해외여행길에 올랐으며
마구잡이 쇼핑이 성행하여 경상수지 적자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국민의 일류지향적인 문화배경과 코뿔소처럼 무리지어
무섭게 움직이는 국민성을 고려치 못한 세계화정책 탓이다.

이 정책이야 말로 잘못 짜여진 소프트웨어의 본보기가 아닐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제 소프트웨어에는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정경유착,
행정기관과 금융기관에는 관행이라고 불리는 부조리가 마치 "바이러스"처럼
기생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겠는가.

우리에게는 관행이 외국인들에게는 부정부패로 보였으며, 우리들의 선물도
대부분 그들에게는 뇌물로 비쳐지고 있으니, 이런 소프트웨어로는 외국인
투자유치는 헛된 구호일 뿐이다.

그러면 우리의 경제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손질해야 할 것인가.

원론적이긴 하지만 국가경제목표에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으로 고쳐야 하며 여기에 바이러스 백신과 같은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획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지금 새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재벌의 구조조정과 고용해고제도
올바른 방향이긴 하지만 이는 경제의 하드웨어에 속하므로 보다 근본적인
소프트웨어의 개선책이 아니다.

재벌이 구조조정을 하고 작은 정부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면 수년후에는 다시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가 도래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비능률적이고 바이러스가 기생하기 쉬운 소프트웨어를 가지고는
선진국진입 문턱에서 다시 좌절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수출만으로는 외채를 다 갚지 못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할
형편이기 때문에 경제소프트웨어도 국익을 증진시키면서 외국인의 기호에도
맞는 투명하고 깨끗한 것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외환위기의 보다 근본 원인을 외국인들은
부정부패로 보고 있으며, 구조조정등 경제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외국기업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