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6일 제의한 여야 영수회담은 심각한 국정공백과
정국경색을 푸는 돌파구가 될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고도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할만하다.

한나라당이 절차문제를 두고 몇가지 이유를 달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청와대 영수회담은 오늘 오전, 오후에
걸쳐 열리게 됐다.

그러나 여야 영수회담이 열린다 해서 김종필 총리 인준거부에 따른 여야
대치정국이 풀릴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금 한나라당은 책임을 지고 여권과 맞상대할 뚜렷한 채널조차 없을
정도로 집안사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는 정당이라면 새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의
인준문제에 당의 사활을 걸겠다는 식의 초강경입장을 견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수차에 걸쳐 한나라당의 막강한 힘이 국익을 위해서나 자신들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만 쓰여지고 있음에 우려를
표명한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총리임명동의안 처리가 한나라당의 본회의
불참때문에 무산돼 새정부 벽두부터 국정이 표류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국난 극복을 위해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에서
총리인준안이 처리되지 않아 내각구성조차 못해 "새대통령에 구정권내각"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통폐합되는 부처의 공무원들은 짐보따리를
싸놓은채 우왕좌왕하는 등 행정공백이 심각하다는 소식이다.

외국 투자자들은 우리의 이러한 정치상황을 불안한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고 국내 금융-외환시장이 다시 불안한 장세를 보이고 있다.

근로자들은 대량 실직의 고통을,정부와 기업은 긴축 감량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이 때에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고통분담은 커녕
새정부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으니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지
묻고 싶다.

국가적 비상시국에 새 대통령의 첫 조각부터 저지하는 것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원내 다수당으로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새 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의로 한나라당이 "명예로운 후퇴"를 할수 있는
명분은 주어졌다.

한나라당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말고 국난극복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길게 보아 그것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이다.

"국민 대화합"의 바탕위에서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새정부및 여당의
대응도 보다 원만하고 세련돼야 한다.

야당을 국정의 한 파트너로 대우해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진지한
자세가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새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을 대통령이 야당에 베푸는
특별시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통치활동의 하나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 정권들어 처음 열리는 여야 영수회담이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생산적 정치의 새지평을 열수 있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