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종 <산업기술정보연 책임연구원>

대기업의 반도체기술이 대만으로 유출된 사건은 우리에게 두가지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산업스파이 활동이 첨단기업을 위장할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해진 점이
하나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태세는 미비점투성이라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6~8월 사이 삼성과 LG반도체로부터
64메가D램 제3세대 반도체의 설계와 공정점검 등에 관한 정보 8백40건을
빼냈다.

또 삼성반도체를 그만두고 나온 연구원 가운데는 64메가D램 반도체관련
회로도 등을 훔쳐내오기도 했다.

검찰이 추정한 피해액 1조2천5백억원은 관련업체들의 연구개발비 손해액
7백억원과 대만 업체가 실제로 64메가D램을 생산하게 됐을 때의 3년간
매출감소분 1조1천8백억원을 합친 것이다.

기술적 격차를 짧은 시간안에 좁힐수 있다든가, 연구개발비가 대폭
절감된다든가 하는 이점은 물론 기업의 사활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산업스파이들의 첩보활동의 표적인 영업비밀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업비밀이란 일반적으로 기업이 비밀로 보유하고 있는 기술-경영상의
정보로서 총칭되었을 뿐 뚜렷하게 개념이 없어 "기업비밀" "재산적정보"
(property information) "트레이드 시크리트"(trade secret)
"노하우"(know how) 등의 용어로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국내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보호규정은 영업비밀을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기타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업비밀과 특허와의 차이점을 감안하여 기업체의 지적재산권 보호전략을
철저히 세우도록 해야한다.

우선 권리의 발생요건에서 특허는 신규성 진보성 산업상 이용가능성
등을 요건으로 하며 각국별로 특허등록을 하여야만 권리로서 성립될수
있는데 반하여, 영업비밀은 비공지성 경제성및 비밀유지노력만 있으면
별도의 등록이 필요없이 즉시 성립된다.

둘째로 권리의 내용면에서 특허는 독점 배타적인 권리이므로 일단
특허등록에 의하여 특허권이 성립되면 타인이 그러한 특허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무조건 금지시킬수 있는 원칙이다.

이에 반하여 영업비밀은 그 대상을 적법하지 않는 방법으로 취득하는 것을
금지시킬 뿐이므로, 타인이 독자적으로 동일한 영업비밀을 개발한 경우 또는
그 영업비밀을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경우 그 사용을 저지할수 없다.

셋째로 권리의 보호기간은 특허의 경우 각국별로 특허법상 특정돼있는
기간동안만 보호가 가능하나(우리나라는 20년), 영업비밀의 경우는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동안은 무한정 보호가 가능하다.

따라서 비밀성을 잃은 경우에는 그 즉시 영업비밀로서의 보호가 끝나게
된다.

넷째 권리행사에 있어 차이점은 특허가 이를 침해하는자 또는 침해하려는
자에 대하여는 누구에게든 침해소송이 가능하나 영업비밀의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법이 규정한 일정한 침해행위에 대하여만 침해소송이 가능하다.

또한 특허침해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택시 운전사가 산업스파이 승객들의 말을 신고하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면 유출은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고 그 피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영업비밀 침해사건은 성범죄사건과 같이 드러난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 더욱 많다.

성범죄는 피해자가 수치심으로 인해, 영업비밀은 그 기술이나 정보의
비밀성 또는 법적분쟁을 꺼려하여 실제발생한 사건에 비하여 공표된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당국 역시 관련법규 개정으로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한 처벌강도를
높이고 수사도 강화하는 등 "산업스파이 국제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미국의 경우 종래의 영업비밀 보호법만으로는 미흡하다 하여 96년에
경제스파이 규제법을 신설해 산업기밀, 부정취득, 비밀유지 의무위반, 악의
또는 중과실에 의한 2차적 전득행위는 물론 이를 위한 음모시도및 미수까지도
처벌토록 하고 있다.

우리도 92년 부정경쟁방지법에 영업비밀 보호관련규정을 보완해 산업기밀
부정취득 행위 등을 처벌하고 있으나 음모나 미수 등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처벌내용도 미국이 모든 침해자에게 최고 징역10년에 벌금50만달러, 기업은
최고 5백만달러인데 비해 우리는 현직 종업원에 한해 징역3년이하 벌금
등으로 끝내고 있고 국외유출시의 가중처벌 규정도 없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기업의 윤리성마저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요즘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있는 국가와 국가간의 경쟁, 기업과 기업간의
경쟁에서 생존하고 발전해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일벌백계의
확립이라고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