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뛰기 시작했다.

아내와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잊은 것이 갑자기 생각났던 모양이다.

신문팔이 소년이 날쌔게 내달았다.

점잖은 신사도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되기전에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터버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동조성을 이렇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덩달아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뛰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관점이 나오기 힘들어 비교적 응집력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는
개별적 사고는 집단사고의 희생물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동조하지 않으면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매스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도처에서 매스컴의 대중설득이 자행되고 있다.

특히 수백만의 사람들을 동일한 언어와 체험으로 묶어주는 대중오락의
시대를 열어놓은 영화의 영향력은 TV시대라는 지금도 여전히 막강하다.

요즘 서울시내 개봉관은 "20세기말의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낸 꿈의 영화"
라는 "타이타닉"이 영화가를 휩쓸고 있다.

개봉 전에 서울에서만 13만장이 예매됐고 개봉 사흘만에 역시 서울에서만
16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니 그 영화의 괴력은 놀랍다.

영화사상 최고인 2억8천만달러를 퍼부어 만들었지만 미국내에서만 개봉
10주째인 현재 이미 제작비를 뽑고도 남았고, 4억6천1백만달러를 벌어들여
흥행 1위를 기록했던 "스타워즈"의 기록을 깰 날도 멀지 않았다는 소식이다.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처녀출항길에 북대서양에서 빙산에 부딪쳐 침몰,
1천5백여명이 수장된 호화여객선의 재난을 다룬 영화다.

타이타닉호의 아비규환보다 계급을 뛰어넘은 지고지순한 사랑, 인간의
이기심과 과학기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져 있기는 하지만 줄거리는
감성적인 사랑에 치우쳐 있는 듯한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도 관객동원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스카상 14개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는 사실에, 또는 미국에서의
흥행성공사실에 우리 관객도 알게 모르게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