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결과 반도체기술 국외유출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산업기밀
보호장치를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지난 18일 이번 KSTC사의 반도체기술 유출사건을 계기로
산업스파이 행위를 엄중히 처벌할수 있도록 관련법규를 강화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당초 알려진 것처럼 기술유출 직전에 범인들이 체포됨으로써
범행이 미수로 끝난 것이 아니라 범인들이 삼성과 LG반도체로부터 빼낸
64메가D램 3세대 반도체의 설계와 공정 검사 등에 관한 정보 8백40건 중
상당수를 이미 대만의 NTC사에 넘겨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이 빼돌린 정보의 질과 양을 고려할 때 1조2천억원(검찰추산)의
직접적인 경제손실은 물론 정보를 제공받은 대만 회사는 손쉽게 차세대
제품을 대량생산할수 있는 길이 열림으로써 국내 반도체 생산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새삼 산업기밀보호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번 반도체기술 유출사건은 기업비밀에 대한 낮은 보안의식과 관련법의
허술한 보호체제로 볼때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모든 기업에 경종을 울려준다고 하겠다.

첨단기술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성이 커 각국이 산업기밀침해
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지만 한국은 부정경쟁방지법에 일부
규정이 들어있을 뿐 처벌대상이나 처벌내용이 미약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영업비밀보호법과는 별도로 경제스파이 규제법을 제정, 개인의
경우 징역 10년이나 벌금 50만달러,기업은 최고 1천만달러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외국에 기술을 넘긴 경우엔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는 등
가중처벌 규정까지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사범에 대한 법정형량은
절도죄(최고 징역 6년)보다 낮은 3년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이하의 벌금이
고작이다.

이처럼 느슨한 법규로는 제2,제3의 산업스파이사건을 예방할 수 없다.

하루속히 처벌규정을 강화하거나 필요하다면 특별법의 제정도 검토해볼
일이다.

관련법이 미약해 이번 사건에서처럼 한국의 피해회사가 대만의 가해업체에
항의서한이나 보내고 마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된다.

차제에 우리도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처럼 국가정보기관을 활용,
첨단업체의 보안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산업스파이 예방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차원의 법체계정비도 중요하지만 산업기밀 유출을 예방하는 1차적
책임은 기업에 있는만큼 기업의 보안의식을 제고하는 일도 급선무다.

취업규칙에 직무와 관련된 비밀유출금지 조항마저 없는가 하면 구체적인
비밀보호기간도 명시하지 않아 소송으로 번질경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이번 기회에 기밀보호비용을 불요불급한 비용으로 인식해온 경영층의
근시안적 사고도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