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한심스럽고 답답하다.

공전과 파행으로 표류하고 있는 임시국회를 지켜보는 심정이 그렇다는
얘기다.

임시국회 회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다급한 현안을 제쳐둔채
인사청문회제 도입과 추경예산 처리시기를 둘러싸고 정략적 대치상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함께 생각해보자.

이번 임시국회가 왜 열렸는가.

외환위기 극복에 필요한 법률의 제정및 개정과 IMF가 요구한 예산재조정을
위한 것이었음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상정된 안건들만 보아도 쉽게 알수 있다.

진통끝에 합의를 이뤄낸 고용조정 관련법 개정, 실업대책을 포함한
민생대책을 담은 추경예산안, 기업구조조정 관련법, 새정부출범을 앞두고
단행돼야 할 정부조직법 개정 등 하나같이 화급을 다투는 안건들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심의조차 외면한채 본회의는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만
참석해 열리고, 한편에서는 야당인 한나라당 단독의 운영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촌극까지 빚고 있다.

공전의 책임을 따지자면 여야를 가릴 것이 못되지만 굳이 따지자면 원내
절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수있다.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긴급현안은 제쳐두고 인사청문회제 도입등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 생각해서 정쟁에 매달려 있는 것은 너무 한가한 발상이다.

추경 심의를 새 정부출범후로 미루자는 주장도 실업대책등 민생문제해결이
한시가 급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의 경제위기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다.

IMF가 그럴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민노총이 노.사.정합의 수용을 거부하고 파업결의를 하는 강경투쟁에
나선 것이 도화선이기는 하지만 파행국회의 개혁입법지연도 불안을
증폭시키는 큰 요인중의 하나다.

국회가 앞장서 난국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노동계를 설득하고 국민들의
협조를 구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오히려 불안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행여나 외환위기가 끝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2백40억달러 규모의 단기외채 상환연장은 원칙만 합의했을뿐 개별은행간
협상은 시작도 안됐다.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이 차입한 4백50억달러 규모의 단기외채는 계속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실행이 되든 안되든 파업논란이 일고 국회까지 공전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쉽게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어느쪽의 논리가 더 타당한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무조건 국회운영을 정상화시켜 법안 심의에 착수하고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에 개혁입법과 추경안을 처리해주기 바란다.

여야 6인회의도 구성된 만큼 원만한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필요하다면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결론을 내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 키워서는 곤란하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