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지난 9일 대의원회의에서 지난주에 타결된 노.사.정협약을
부결시키고 고용조정 법제화 저지를 위해 오는 14일 이전에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는 소식은 새삼 민주노총의 정체와 존재이유를 의심케
하는 우거가 아닐수 없다.

대의원들은 고용조정제 시행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협상에 참여했던
지도부를 총사퇴시키고 총파업 돌입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이번 부결을 이끌어낸 민주노총 내부 강경파의 압력은 앞으로 국회에서의
노.사.정협약 관련법 처리과정과 상설 노사정위원회의 운영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이 확실하며 경총 등 사용자측의 대응도 주목된다.

더구나 총파업에 돌입할 경우 정부쪽과 물리적 대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내 강경파들의 이같은 결의는 으레 한번 해보는 반대라면 몰라도
만약 실행에 옮기려 한다면 한마디로 "도끼로 제 발등 찍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난극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국민적 결의를 담고
있는 노.사.정 합의안을 이제와서 원천무효로 하는 것은 형식상으로나
합의의 기본정신으로 볼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의원들의 결정에 따라 민주노총
대표 자격으로 협상에 참여했고 또 합의안에 조인했다.

조인 직전에도 긴급회의를 소집해 조직내부의 의사를 타진했었다.

이처럼 합리적 절차를 거쳐 어렵게 성사된 합의를 강경-온건파간
세력다툼이라는 민주노총 내부의 문제 때문에 무효화시킨다는 것은
국민여론이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최근 우리의 대외 신인도가 많이 회복되고 외환위기가 벼랑끝 고비를
넘길수 있었던 것도 노.사.정 대타협의 덕분임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노총이 파업이라는 초강경수단을 동원해 대타협의 무효화
투쟁에 나선다면 이를 용납할 국민이 어디에 있으며 또 우리를 보는
국제사회의 눈이 어떻겠는가.

아무리 법외 단체라고는 하지만 일단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받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온 이상 민노총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는 무책임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

노.사.정 합의의 재협상 주장과 관련해 또 한가지 강조해야 할 것은
이같은 주장이 국회의 관련법 심의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야간 의견대립으로 임시국회가 거의 공전하다시피 하고
있는 마당에 민주노총의 재협상요구가 불거지면서 고용조정제를 비롯한
노.사.정 합의관련 법안처리가 야당의 비협조적 태도로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때문에 어제 어렵사리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안건조차 제대로
심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난 극복에 공동책임을 느껴야할 거대야당의 시각이 이처럼 좁아서는
안된다.

외부요인에 우왕좌왕할게 아니라 야당도 노.사.정 합의의 기본정신에
따라 법안 처리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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