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려해도 50가지가 동시에 잘못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신화적 성장으로 극찬을 받던 한 나라가 국가부도의 나락으로
추락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어느 한곳 온전하게 작동된 구석이 없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치인과 경제인,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위기관리의 실무를 맡았어야할
관료들마저 엉뚱한 자만과 이기에 사로잡혀 고집만 부리고 있었다.

폭풍이 몰려 왔지만 경고사이렌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청문회가 준비되고 있다지만 청문으로 무엇이 가려질지 모를 일이다.

우스꽝스런 말장난만 하다 말 공산도 크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어리석음들이 반복되었는지를 이제
돌아본다.

뒤죽박죽으로 얽혀있는 환란 막후의 숨가빴던 순간들이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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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3일로 거슬러 올라가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을수
없다.

이날은 홍콩 증시가 함몰되면서 아시아 지역 금융시장 전체가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음이 분명해진 날이었다.

더욱이 한국과 홍콩의 운명이 갈린 날이기도 했다.

물론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훨씬전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했지만 괴멸적
양상을 띠며 접근해 온 것은 이날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홍콩이 주된 타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홍콩의 금융가에는
7월1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부터 한번쯤 호된 시련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고급 식당이나 호텔의 사교클럽 등에서 무성했거든요. 10월23일
홍콩 주가가 하루에 14%나 폭락하면서 올 것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H종금사 홍쿵지점장)

그러나 정작 문제는 우리자신이었다.

홍콩 증시의 일대혼란은 즉각 종금사들의 해외차입 매커니즘을 타고 국내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동남아 투자를 늘려왔던 종금사들과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왔던 국내
은행들은 이미 7월부터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10월23일 홍콩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고 말았다.

홍콩증시의 폭락소식이 전해지면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과 한국은행
국제부등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제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은이 자금을 막아주는
것도 더이상은 물건너갔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외환대책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던거지요. 저녁늦게 외환기획과 윤여봉 과장 등과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IMF행이 불가피해질수도
있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지요. 보고서도 작성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며칠을 초조한 가운데 덮어놓고있다가 일부를 보완해 27일 청와대와 재경원
에 보고됐습니다. IMF행이 공식보고서에 거론되기는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한은 국제부 정규영 부장)

재경원도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종금업계의 부실해외자산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차여서 홍콩
사태의 파장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23일 모니터에서 홍콩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보고 등골이 서늘해 왔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었지요. 우리과 직원들은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거든요"
(재경원 외화자금과 김석동 과장)

김과장의 말대로 즉각적인 파장이 한국을 덥쳐 왔다.

한국증시 주가는 24일 대폭락으로 치달았고 스탠더드앤푸어즈(S&P),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단계씩 떨어뜨렸다.

이날 S&P는 AA+이던 한국등급을 A+로 한등급 하향 조정했다.

"우수"에서 "양호"였다.

한나의 신호였다.

24일 재경원과 한은은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그동안의 싸움을 중지하고
긴급 합동회의를 열었다.

홍콩사태 분석이 주된 메뉴였다.

금리를 높이고 환율변동폭을 대폭 확대하자는 한국은행의 주장과 그같은
방법은 자칫 외환위기를 외부에 공표하는 것밖에 안된다는 재경원의 신중론
이 맞섰다.

재경원 내부에서도 금융정책실의 K과장 등이 이제 더이상 숨길 수도 없다며
적극론을 폈으나 이미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상태였다.

은행도 그렇지만 종금사들은 여기서 치명상을 입었다.

K종금 김모과장의 증언.

"이미 BOK(한국은행의 영문명칭이니셜)클럽이 만들어져 있던 때였습니다.
한은으로부터 매일 일정액씩 외화를 지원받지 않으면 부도가 나는 종금사들
이지요. 홍콩 사태가 터졌을 때 이제 우리도 BOK클럽으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홍콩 사태 바로 다음날인 24일 우리회사에도 담보를 더
넣으라는 독촉전문이 이 은행 홍콩지점으로부터 날아왔습니다. 후회가
막급했지만 이미 업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종금사들은 일대충격을 받았다.

지난 96년부터 외국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동남아채권을 매입하고 매입
채권을 다시 담보로 넣는 소위 레버리지드 레포(Repo) 거래를 통해 자산을
크게 늘려온 종금사들이었다.

지금와서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선진금융기법이라는 이름으로
일대 유행을 탔다(H종금 P부장).

동남아 사태로 증권시세가 폭락하고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부족한 가치
만큼은 새돈을 찔러 넣어야 했으나 돈이 없었다.

종전에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달러를 빌려 주었으나 은행들도 라인이
끊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쩔수 없었습니다. 9월말부터 신규는 커녕 외채 연장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판에 종금사에 밀어줄 돈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라고 J은행 국제담당 이사는 회고했다.

종금사들도 그렇지만 은행들도 11월초로 자금 만기가 몰리고 있었다.

9월말 미쓰비시 등 일본계 은행들의 반기결산당시 회수된 자금은 결산이
끊나고도 다시는 돌아나오지 않았다.

다음은 S은행 홍콩주재 P씨의 회고.

"이미 10월부터는 모든게 변칙이었습니다. 하루빌려 하루갚고 하다가
그것마저도 끊어지더군요. 거래하던 일본은행 지점장들을 때려죽이고 나도
죽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홍콩 사태가 나면서 이제는 끝장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괴멸적인 상항이 벌어졌다.

주식을 팔고 달러를 환전해 떠나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더이상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내우외환이었다.

호화찬란한 시중은행장들의 방에는 빚을 갚으라는 외국은행들의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27일에는 한보사태 이후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있을수 없었고 다른 장관들은 국회대책이나 예산
문제에만 관심이 있었다(재경원 담당자 증언).

28일에는 원달러 1개월물이 1천원을 돌파했다.

같은 날 모건스탠리증권사가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한통의 전문이
날아들었다.

모건은 개도국 시장분석으로 성가가 높은 터여서 어느 증권사보다 투자
조언에 무게를 갖고 있었다.

이미 10월 27일까지 8천억원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한국탈출을 시작한 국제
투자가들에게 모건의 대피경보는 결정타를 날렸다.

이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긴급 ; 아시아지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라. 현단계에서 설혹 손해를
보고 있더라도 즉시 팔아치우고 빠져 나오라"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다.

바로 이날 증시주가는 무려 35포인트나 함몰하면서 5백선이 무너졌다.

긴가민가하던 외국인투자자들의 대탈출은 마치 "사이공 대탈출"을 방불했다.

10월 한달간 고스란히 1조원이 서울증시를 탈출했다.

달이 바뀌어 11월3일은 외국인 투자한도가 확대된 날이었다.

분수령이었다.

정부는 숨을 죽이고 3일을 맞았다.

달러의 탈출행렬이 여기서 끊날 것이냐가 이날 판가름날 판이었다.

"일요일인 2일밤 늦게까지 각증권사 관계자들로부터 사황파악을 했습니다.
정부가 간섭을 해서는 안되지만 연기금 등에도 일일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담당자가 회사에 나오지 않은 곳은 집에까지 전화를 했습니다. 제발 주식
좀 사달라는 부탁을 하고 협박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마지막 승부라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그러나 예비주문을 파악해 보니 외국인 주문은 허수
주문까지 포함해서 1천5백억원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게임은 끝난
것이었지요"(재경원 김성진 증권제도 과장)

3일 아침이 밝았다.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각인 7시께 출근한 윤여봉 외환기획과장은 밤새 들어온
외신들을 정리하면서 경악하고 말았다.

무디스와 S&P에서 또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X같은 자식들이라는 욕이 절로 나왔지만 부총리에게 뛰어올라가 보고부터
해야 했다.

이러는 사이 두번째 사이렌이 울렸다.

11월5일 뉴욕에 본사를 둔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관련
기사를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한국외환보유고 위험수위"라고 갈겼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알고보면 20억달러에 불과할 것"이라든가 "선물환
투자가 많아 순외환보유고는 바닥"이라는 등의 기사를 써댔다.

물론 그들은 과장된 보도를 하고있음에 틀림 없었다.

선물환은 연말까지 만기가 오는 것이 10억달러 안팎에 불과했고 포지션
총액도 60억달러에 그쳤다.

"연말까지 외채만기물이 8백억달러"라는 월스트리트의 주장도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경식 부총리팀의 해외언론에 대한 반응은 어리석기 작이 없었다.

재경원은 이미 10월29일에 파이낸셜타임즈에 직접 반박문을 게재한 것을
비롯 11월10일까지 김준일 자문관 이름으로 8차례나 반박문을 발송해 게재를
요구했다.

강부총리는 파이낸셜타임즈에 보낸 반박문에서 기아문제와 제일은행 출자를
언급한 다음 금융개혁법안에 대해 긴 설명을 덧붙였다.

외국과의 싸움에서 헛발직을 시작한 대목이다.

재경원 관계자들은 "1년 내내 한국언론에 부대끼고 나니 이젠 외국언론들
까지 들볶는다"며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였다.

재경원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해 왔던 언론들을 "저질 삼류에다
국익을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연일 출입기자들과 논전을 벌여 왔던 중이었다.

강부총리는 해외언론들과도 논전을 벌이게 되면서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를
상대로 싸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날 저녁 결정타가 홍콩에서 날아들었다.

페레그린증권은 다음날 새벽 전세계에 배포될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즉시 한국을 탈출하라 ; Get out of Korea,right now"

<정규재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