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철 < 하나은행 회장 >

외채협상이 타결되어 외환위기를 극복할 실마리는 풀었으나 그 구체적인
결실은 국난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성실한 노력에 달려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안이한 낙관주의와 방만한 과거회귀 근성이다.

이번에 타결된 내용은 지난해 만기가 도래했던 금융기관 단기외채
2백50억달러중 2백40억달러의 지불기일을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1~3년까지
연장하고 금리는 6개월물 리보금리에 연 2.25~2.75%를 가산한 수준으로
결정하며, 중도에 갚을 수 있는 콜옵션을 갖도록 하는 기본원칙을 채권단과
우리 협상팀간에 합의한 것이다.

구체적이고 최종적인 결과는 이를 바탕으로 채권기관과 채무자인 국내
금융기관이 개별적으로 만기 및 금리조건을 합의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1천5백30억달러의 외국 빚을 지고 있으며 이번 협상결과
절반에도 못미쳤던 중기외채가 9백68억달러로 64%로 늘어나고, 올 한햇동안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5백62억달러로 36%로 줄어들어 외채 만기구조가 개선
되고 상환부담이 연기되었을 뿐 그 규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다만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가 연 8~8.5%로 결정됨에
따라 전체 외채의 한햇동안 이자부담이 1백20억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하루 기일이 도래하는 외채의 상환독촉으로 지불유예선언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모면한 것만은 다행한 일이나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외채상황은 이처럼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

외채 협상타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인양 낙관적인 분위기에 젖어 이런
어려움을 잠시라도 망각한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이럴수록 경제난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 먹고 단합된 의지로 보다 신중하고 끈기있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무엇보다 먼저 이번 협상결과를 바탕으로 채권-채무자간의 개별적인
단기외채 기한연장 및 금리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미국을 비롯한 각 우방국들이 우리의 외채문제 해결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개별 채권금융기관의 협상참여는 자율로 결정하게
되어있다.

그동안의 교섭과정에서 그들은 서로 입장차이를 보여 왔으며, 비록 같은
정부지급보증이라 하더라도 각 당사자간의 신용관계는 다양하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오랜 거래관계를 바탕으로 교섭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원활히 조정하여 모든 대상채권이 협상의
내용대로 원만하게 타결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협상을 통하여 신뢰를 쌓음으로써 계속해서 기일이 도래하는
5백62억달러의 단기채도 자연스럽게 상환기일이 연장되도록 하여 IMF의
지원자금을 더 활용하지 않고도 문제를 순조롭게 풀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런 노력은 경상수지의 구조적 요소를 개선함으로써 채무이행뿐
아니라 부채감소의 장기적 전망을 보여주는 일이다.

부실기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효율적인 금융개편을 통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적극적인 수출 노력으로 무역수지의 개선을 극대화하는 일이
급선무다.

정부는 금년에 3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예상하고 있으나 이러한 규모로는
1년에 1백20억달러에 달하는 외국빚의 이자를 갚기도 벅찬 형편이니 앞으로
수출을 통한 외화획득과 소비의 효율화를 통한 외화절약을 꾸준히, 그리고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개별기업의 구조조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과감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경상수지의 적자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외국 투자가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이며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는 이를 위하여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한다.

셋째로 외자는 사회적 불안을 지극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유념해야 한다.

앞으로 외채를 갚아가면서 필요한 기일을 연장받고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는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부실기업의 정리나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문제는 여러 면에서 사회불안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

모든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기 위하여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이와 함께 상당한 사회적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실업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대비위에서 사회기강과 질서확립을 위한 효과적인 안정책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아직도 종식될줄 모르는 아시아지역 통화위기의 귀추에 대하여도
언제나 만전의 대비를 해야 한다.

오늘의 위기는 중국의 환율인하에서 시작하여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제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파급된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여진에 휩싸여 있는 인도네시아의 귀추와 함께 이 위기가
다시 홍콩이나 중국에 영향을 미친다면 또 한차례 심각한 파동을 몰고올
위험이 있다.

이를 항상 경계하며 효과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