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 성업공사 부사장 >


주요 아시아 국가의 경제가 위기상황에 직면하면서 아시아지역 경제성장
모델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한계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이미 아시아 경제의 성장은 생산요소의 단순확대에 치중하는 투자에
의존하고 있어 경제구조의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가 있어
왔으나 현재의 위기적 상황을 계기로 아시아적 경제성장 모델은 이미 그
시대를 마감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항이 있다.

그러나 서구와 아시아가 역사와 문화, 국가 생성과정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경제성장 과정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와 유사한 논의로서 지난 80년대초 일본계 미국 경제학자인 윌리엄
오우치가 발표한 Z이론이 촉발시켰던 미국식 경영기법과 일본식
경영기법간의 우월성에 관한 논란을 들수 있다.

오우치는 일본식 경영기법이 우수하다는 전제를 깔고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아시아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였다.

당시는 미국이 생산성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시점이어서
합리성이나 기술적 우위성 보다는 인간관리의 특수성과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높은 생산성을 이룩해낸 일본식 경영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대부분의 미래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아시아의 경제성장을
기적으로까지 높게 평가하면서 무한한 성장과 발전이 지속될 것으로
낙관하여 왔다.

그러나 작년 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불과 몇달만에
태국 인도네시아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따라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성장모델, 유교적 자본주의 또는
전략적 자본주의 등으로 지칭되면서 아시아의 기적을 뒷받침하던 경제.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이제는 무능과 비효율, 나아가 부패의 온상이라고
까지 평가 절하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의 아시아 경제위기는 비교적 서구화가
잘 진전된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전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시아 경제모델인 싱가포르는 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적 경제성장 모델은 싱가포르가 한예가 될수 있겠지만
기존의 틀에 서구적 개념을 접목한 새로운 성장모델을 마련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산업 문화 자연환경 등 각각의 교유한 여건을 배경으로 생성된
서구방식과 아시아적 가치가 결합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현재 동구권 국가들이 서방경제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고있는
어려움보다도 더 혹독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시아 성장모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칠 정도로 아시아 중심적이며
자기국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지적하는 바와 같이 아시아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아시아적
기준과 척도에 따라 이루어져 온 관계로 미국이나 유럽국가들과 효과적으로
경쟁할수 없었다.

산업구조의 조정도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이지만 무엇보다도 신상품 개발을
중시하는 기업풍토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아시아지역에서는 자원이나 인구문제로 인하여 생산능력의
확대에 주력하는 투자에 치중하여 왔다.

이와같은 투자패턴으로 기술개발은 후순위로 물러날수밖에 없었다.

양적성장과 조화를 이루는 질적성장을 추구하여 경제구조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제위기의 조짐이 감지되었을 때에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도네시아나 태국의 경제위기 가능성은 멕시코사태 이후 계속 지적되어
왔으며, 특히 이들 국가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분명히 예측되었던 일이었다.

당사국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나 세계 어느나라도 그 위험에 대비하지
못했을 뿐이다.

또한 아시아 국가간의 경제적 협조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내의 자원 자본 노동 등의 상호 보완적인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미국이 장기간에 걸쳐 누리고 있는 호경기의 원인중 하나로 지난
92년에 타결된 NAFTA를 꼽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아시아 국가간 경제력의 차이가 지역내 경제협력의 장애요소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호이익이 되도록 조정될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현재 겪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기 위하여는 각국의 산업 문화 자연환경 등 고유한 특성을
바탕으로 하고 이에 서구적 모델의 장점을 도입한 새로운 성장모델 개념을
정립하여 나아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