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MF구제금융을 지원받은 지 두달이 다 돼 간다.

급한 불은 끈 상태이나 여전히 노동시장개혁, 대기업구조개편 등
헤쳐나가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들 개혁의 성공여부는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최근 방한한 장 미셸 세베리노 세계은행 부총재와 양수길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원장, 이규억 산업연구원 원장이 20일 본사 회의실에서 최근의 한국
경제상황과 세계은행이 마련하고 있는 개혁프로그램을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 내용을 요약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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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길 원장 =대한지원과 관련 세계은행이 요구하는 개혁프로그램이
어떤 분야에 촛점을 맞춰 돌아가는지가 한국인들의 큰 관심사다.

<>세베리노 부총재 =금융산업개혁, 대기업구조개편, 경쟁정책, 사회보장
제도를 포함한 노동시장개혁 등 주로 4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이들 분야는 한국이 하루빨리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 정상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하기위해 선결돼야 할 핵심 과제들이라고 믿고 있다.

금융개혁과 관련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활발한 논의가 있어 왔다.

그러나 나머지 3개 분야는 이제 시작단계다.

세계은행은 노동시장 유연성확보와 동시에 대규모 실업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다.

<>양원장 =이들 4개분야중 이미 많은 논의가 이뤄진 금융개혁을 제외하고
3개 분야를 하나 하나 짚어 보는게 어떨까 한다.

먼저 대기업구조개편과 관련 여러 조치들이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베리노 =무엇보다 경영의 투명성과 개방성이 확보돼야 한다.

기업회계기준은 물론이고 기업과 기업간, 기업과 은행간 채권.채무관계도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투명성은 주요 경영정책 의사결정과정에도 적용돼야 한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도 대폭 강화돼야 한다.

<>이규억 원장 =이미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기업경영 투명성확보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새 정부는 이에 대해 반대의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오는 3월말까지 30대 대기업들의 상호채무보증을 자기자본의
1백%이내로 줄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합재무재표작성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따라서 세계은행의 대기업구조개편프로그램과 현재 한국정부와 대기업
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내용과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안다.

<>양원장 =일부 대기업들이 기업구조개편시기를 앞당긴데 대해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결합재무재표작성은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정부와 노동계에서 기업구조개편이 보다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은행이 생각하고 있는 기업구조개편 일정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세베리노 =현재 개혁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밝힐 입장은 못된다.

다만 한국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조속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대체적인 윤곽을 잡고 있다.

<>이원장 =기업구조개편중 가장 난항이 예상되는 부문이 바로 결합재무제표
작성이다.

결합재무제표작성에 있어서 어느선까지를 계열사로 간주하느냐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세베리노 =세계은행은 이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양원장 =이같은 급진적인 구조조정작업을 거칠 경우 그동안 경제 및
산업활동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대기업그룹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로 인해 한국의 산업화속도가 주춤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베리노 =세계은행은 절대 대기업그룹만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기업그룹들도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만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오늘날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기업들은 모두 전문화가 잘 이뤄져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미 많은 수의 한국기업들이 이같은 흐름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산업화속도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21세기 세계경영의 신조류에서 한국기업들은 새로운 출발선상에
있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한국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전문화가 이뤄진다면
앞날은 매우 밝다.

<>양원장 =한국의 경쟁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외국인 투자가
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세베리노 =앞서 말한 것처럼 외국투자자들에게 내국인과 동등하게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될 것이다.

앞으로 시장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법적 장애물을 하나 하나 점검해 나갈
방침이다.

파산 등을 포함한 기업퇴출장벽도 똑같은 비중을 갖고 다룰 생각이다.

<>이원장 =파산절차를 비롯한 기업퇴출과 관련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한국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잘 알겠지만 이는 절차상의 문제는 아니다.

파산절차중 어떤 요소도 기아부도를 가로막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인 요인이 강하게 작용했다.

<>세베리노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경쟁정책도 절차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게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퇴출이 가능해야 새로이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양원장 =한국인들 사이엔 현재 주가가 엄청나게 떨어져 외국인들이
헐값에 한국기업을 매수해 한국경제를 지배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

<>세베리노 =개인적으로 외국기업들이 한국기업이나 주식을 사들이는데
찬성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자본을 필요로 하기때문이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한국기업으로선 타기업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기업으로 흘러갈 수 있는 자금이 고갈될 때 외국인 투자는 활력소로
작용한다.

외국인 투자는 또 한국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며 원화가치안정에도
도움을 줘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경제가 외국투자가에 의해 완전 장악되는 사태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외국투자로부터 혜택을 받을 것이다.

<>이원장 =경쟁정책과 관련 균형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기업그룹체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한국의 독특한 제도로 이미
여러가지 투자관련 제한을 받고 있다.

계열사에 대한 출자가 순자산의 25%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있다.

한국의 경쟁정책을 고려할 때 이런 종합적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세베리노 =한국도 독점금지법 같은 경쟁정책을 도모하기위한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문제다.

<>양원장 =이제 노동시장으로 화제를 바꾸자.

실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로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는가.

<>세베리노 =우선 한국 정부는 실업자 수당을 증액해야 한다.

수당지급시기를 늘리고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도 완화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재정에 부담이 되겠지만 사회보장 조치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간접적인 지원도 있다.

직업훈련, 재교육 등을 통해 재취업을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금과 구호제도이다.

이는 실업자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나 실업자 보호에 큰 효과가 있다.


<>양원장 =사회보장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IMF와의 합의에 따라 내년까지 긴축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어디서 자금을
마련할 것인지가 문제거리다.

<>세베리노 =별로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또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한국정부가 IMF, 세계은행 등과 실업대책에
관해 협의할 수도 있다.

<>양원장 =IMF가 초긴축을 요구하는 등 가혹한 조건을 내걸어 한국의
산업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세계은행이 IMF의 조건에 의견을 같이 해온 것도 사실이다.

<>세베리노 =IMF의 지원조건이 가혹하다 또는 적당하다고 과학적으로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긴축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금리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린다면 즉각적으로 해외로의 자본유출이
일어나 경제는 더 큰 피해를 입고 금리는 더 오랜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용인하면 금리를 급등시키고 이는
기업들에게 더욱 가혹한 상황이 될 것이다.

IMF의 거시정책권고는 옳다고 생각하며 한국정부가 이 권고에 따르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

<정리=김수찬.강현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