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하이터치 공동기획 -


이면우 <서울대 교수>


세계 어느 민족을 한반도에 옮겨 놓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들보다
더 잘하지는 못할 것이다.

심성을 비판하고 자조적으로 비하하고 기를 죽이면서 남을 모방하라고
몰아치면 잘할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민족성을 바라보는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것이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은 단추를 끼면 낄수록 더욱더 비뚤어지게
마련이다.

이제 잘못 자리잡은 모든 단추를 풀고 차분한 마음으로 첫단추를
다시 끼워야 한다.

우리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속담중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친척들이 사촌과 나를 자꾸 비교하면서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데 불편해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어디 우리만 그렇겠는가.

"남이 잘되면 모두 다 따라한다"는 이야기도 우리를 비하하는 말같이
들린다.

어디 우리만 그런가.

전세계의 기업인들이 초일류 기업을 따라하고자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주위를 보면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보고 성격탓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습관을 고치기 힘드니 성격을 인정하라는 뜻일 것이다.

개인의 성격도 바꾸기 힘든데 우리가 민족성을 바꿀 수 있겠는가.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민족성이 개조 대상인가.

다른 민족들은 고유의 특성을 존중하고 미화하고 승화시키는 노력을 철저히
하여왔다.

왜 우리만 자조적으로 비관하고 자학하면서 남의 떡만을 부러워 하는가.

우리 지도계층이 민족성을 파악함으로써 국가발전을 도모하고자 한 적은
있는가.

조선조때 외세 침략에 시달리던 왕이 대신에게 물어보았다.

"사방에서 광풍이 몰아칠 때 어떻게 가옥을 보존할수 있겠는가"

대신이 응답하였다.

"사방의 문을 열어놓고 광풍이 쇠잔하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외세가 침략하면 문을 활짝 열어주고 스스로 힘이 빠져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난리만 나면 국가지도계층은 피신을 서둘렀나보다.

그동안 백성들이 겪는 고생은 어떠하였을 것인가.

민족성의 파악은 커녕 국가의 존망조차 방관하는 철학을 가졌던 것이다.

근세의 역사는 어떠한가.

조선조의 지도계층은 당쟁에 여념이 없었고 구한말 대신들은 나라를
팔아넘기는 논리개발에 열중하였다.

식민지 시절은 우리의 특성과 심성을 말살하고 비하시키는데 집중하였던
시절이다.

해방후에는 사회혼란과 전쟁으로 민족성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1960년대이후는 독재의 효율과 경제발전논리가 모든 가치관을 압도하였다.

지도계층은 현자로 대체되었고 화전민 마을은 자존심경쟁에 여념이 없었다.

국가의 비전은 소득증대 구호뿐이었고 소득증대와 함께 사회적 갈등과
가치관의 혼동도 증폭되어 왔다.

민족성을 생각해볼 겨를이 있었겠는가.

처음 잘못 끼워진 단추가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민족성을 돌아볼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필자는 W이론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한 60년대는 선진국의 3D현상이 고조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국가목표를 세웠고 풍부한
노동력과 근면한 국민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토끼는 그간의 경제성장에 만족하면서 거북이의 행진을 방관하였다.

우리의 경쟁자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였으나 이들이 추구하던 발전방향은
우리의 대규모 양산조립과는 다른 축이었다.

토끼는 잠자고 있었고 다른 거북이들은 방향을 달리하던 경주에서
우승하였던 것이다.

이제 토끼는 새로운 경기규칙을 만들며 맹렬한 기세로 달리고 있다.

토끼가 제정하는 새로운 경기규칙은 정보혁명과 자유무역과 무한경쟁이
강조되는 장애물경기인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경쟁국들도 잠에서 깨어난지 오래이다.

선진국의 질주와 개발도상국의 추격속에서 그간의 성취감에 휩싸여 허세를
부리다 오늘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였던 바는 75년께부터 우리도
독자적인 경기종목을 만들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토끼가 제정하는 게임의 법칙하에서는 거북이는 영원히 이길수 없다.

거북이는 거북이의 특성을 토대로 하여 머리와 사지를 몸속에 집어넣고
절벽 밑으로 구르는 경기를 주도했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잘못 선택한 경기종목에 집착하였던 것이다.

소 쥐 벌의 우화도 설명하였다.

풍부한 고급인력, 막대한 예산, 장기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미국은 황소로 표현하였다.

황소가 개발한 첨단기술을 제품기술로 슬기롭게 응용하는 일본은
소 머리위에 앉아 있는 쥐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어떤 동물인가.

정부와 대학과 출연연구소는 한정된 고급인력과 부족한 연구예산으로
첨단기술 개발을 꿈꾸며 소를 흉내내고자 하였다.

산업계는 일본의 익숙한 관습과 언어소통의 장점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점을 활용하고자 쥐의 전략을 따랐다.

결과는 어떠하였나.

미국을 동경하면서 일본을 본받자는 소모적인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소의 구호를 따라 외치고 쥐의 행동을 흉내내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병든 동물이었다.

우리 고유의 전략을 개발하였어야 했다.

생각해보라.

풍부한 지하자원과 우수한 두뇌로 무장한 2억7천만명의 미국과 투철한
지도자와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1억3천만명의 일본을 모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척박한 자원과 일천한 산업구조와 4천6백만명의 적은 인구를 가진 우리가
미국 일본과 같은 전략을 채택하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우리는 황소도, 쥐도 아니며 온 동산을 날아다니는 벌이 되었어야 했다.

우리는 두명의 코치 사이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왔으나 정작 필요한
경기기술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셈이다.

산학협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민족심성은 사냥개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냥개는 사냥의 목표가 설정되기 전까지는 질주하는 법이 없다.

우리의 연구원들도 처음부터 열심히 일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목표가 불확실하였던 연구초기에는 관심이 흩어졌고,방황하였고,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탐색기간을 거쳐 연구목표가 설정되면 소극적이던 연구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지지부진하던 연구는 순식간에 질주로 변하였다.

마치 목표를 발견한 사냥개가 사력을 다해 질주하는 것과 같았다.

연구결과 개발된 신제품은 꽃마을 회의에 회부되게 마련이다.

꽃마을 회의에서 부정적인 평가와 비관적인 전망으로 매도를 당한 후에는
실의에 빠지기는 커녕 예기치 못했던 단결이 이루어졌다.

사냥개의 집념이 표출되면서 역전극이 시작된 것이다.

제각각 나돌던 사냥개들이 팀워크를 이루기 시작하는 것이다.

목표달성을 위한 질주가 시작되면 지도자의 역할이 없어진다.

지도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고 도와주지 않아도 각자가 알아서 뛰는
것이다.

마치 목에 끈이 풀린 사냥개의 질주를 연상시킨다.

먹이를 찾은 사냥개가 주인에게 이끌리며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반면 일본의 저력은 사역견의 특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지도자는 솔선궁행과 책임감으로 무장되어 있다.

합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면 전원이 단결하여 그 목표를 성취한다.

철저히 모방하고 쉴사이 없이 개선하며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역견은 사역견의 장점이 있고 사냥개는 사냥개의 특성이 있다.

사냥개가 사역견의 장점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설사 배웠다 하더라도 사역견같이 잘할 수 있겠는가.

야성의 돌파력을 자랑하는 공격수가 차분하고 성실한 수비수의 덕목을
흉내내고자 한 것이다.

토끼-거북이, 소-쥐-벌, 사냥개-사역견의 토론에서 우리가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

거북이는 토끼가 주도하는 경기에 참여하여서는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경기종목을 잘못 선택하였던 것이다.

제아무리 황소의 풍채와 쥐의 슬기가 부럽더라도 벌은 벌의 길을
가야한다.

코치 선정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사냥개와 사역견의 비유에서 강조하는 바는 사냥개는 사냥을 하여야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사역견의 장점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공격 포지션을 맡을 선수가 수비 포지션을 맡은 것이다.

동물을 예로 들어가며 찾아낸 지혜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성의 재발견을 위한 실사가 모든 일에 앞서 진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경황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부질없는 구시만 반복하면서
헛된 노력을 낭비하여 온 것이다.

세계 각국의 최고 운동선수들을 모아놓았다 하더라도 경기종목을 잘못
선정하고 코치도 잘못 선택하고, 포지션도 뒤바뀐채 경기를 진행하였다면
이길 수 있겠는가.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의 민족성을 새로이 발견함으로써 적성에 맞는 경기를 찾아내는
노력을 최우선으로 진행하여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우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우리의 심성을 장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남이 해 잘되면 모두 다 따라하는 것도 발전의 실마리로 채택하여야
한다.

이제 이 두가지의 민족심성을 발화시킬 수 있는 점화장치가 필요하다.

점화장치는 무엇인가.

잠들어 있던 창의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우리의 창의적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어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가.

우리 이웃의 사촌들이 배가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는 잘되는 우리를 보고 모두 다 따라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남의 것만을 찾아 모방하던 우리가 창의적 결실을
놓고 우리끼리 모방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모방만 할 것 같던 한국에서 창의적인
결실이 분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도 배가 아플 것이다.

우리의 성공을 지켜보다가 그들도 따라할 것 아닌가.

세계 각국이 배우고 따르면 바로 그것이 일류선진국 아닌가.

이것이 사주이론이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의적 노력을 통해 결실을 얻으면, 둘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심성이 되살아날 것이다.

셋째 남이 잘되면 모두 따라하는 우리의 본능이 발동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를 보고 따라하는 주변국들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주이론이다.

이제 첫단추를 끼워야 한다.

잠들어 있던 우리민족의 창의성을 일깨우는 것이 그것이다.


<>이 시리즈는 한경 인터넷전자신문(http://www.ked.co.kr)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