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구 <동원정밀 사장>

그동안 각계각층에서 백가쟁명의 형태로 주장해온던 정부조직 개편문제가
대선이 끝나자마자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그 범위와 시기및 방법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은 기득권이나 집단이기주의로 인하여 새정부 집권초기에
과감하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없이 밀실에서 처리될 경우
오히려 부작용도 적지 않았던 과거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의 정부조직 개편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을 몇가지 제시해본다.

첫째는 정부조직개편의 기본방향으로 효율성 민주성 전문성을 지향해야
한다.

조직개편의 뚜렷한 철학없이 단순히 몇개 부처를 통합하고 공무원을
몇% 감축하려고 하는 하드웨어적 접근은 껍데기만의 개혁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의 효율화 민주화 전문화와 같은 소프트웨어적
접근이다.

흔히 작고 효율적인 정부로 표현되는 효율성의 문제는 공공행정에
경영개념을 도입하여 정부의 모든 활동이 비용효과분석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인력과 예산을 줄이고 일하는 사람보다 챙기는 사람이 많은 조직구조를
슬림화하자는 것이다.

민주성의 문제는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적법절차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특별권력관계에 있는 공무원이 지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소신껏
일할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전문성은 오늘날의 행정환경이 전문가에 의한 봉사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우리 행정도 일반행정가에 의한 아마추어 행정에서 전문가에 의한 프로
행정으로 전환해가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앙부처가 지방에서의 자기업무집행을 위해 특별지방행정
관청을 두고, 지방정부는 오직 고유사무만을 수행토록 하는 "영-미식
지방자치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중앙의 업무를 지방정부에 위임하여
수행하는 "대륙식 지방자치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정책의 수립도 집행도 모두 비전문가에 의해 수행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둘째는 정부조직개편을 보다 광범위하게,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다가오는 정부조직개편이 시간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행정부에 국한할
가능성이 많으나 입법 행정 사법및 정부투자기관과 연구소 그리고
관련단체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정부가 수행하는 것이 적합지 않은
기능과 업무는 과감히 순수 민간기능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정부조직을 입법화함으로써 정부조직의 변경을 국회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

공무원의 조직을 현재처럼 시행령에 두는 것은 여건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수 있는 장점은 있겠으나 예산과 인력을 확대하여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 각부처의 의욕을 통제할 장치가 절실히 요구된다.

아울러 정부조직법상의 각부처 업무를 구체화함으로써 각 부처가
국가이익보다는 부처간의 위상겨루기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는 공무원임용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학생들이 전공과 관계없이 고시에 매달리고 합격하면 마치 지난
왕조시대의 과거급제와 같은 사회적 지위 프리미엄이 되어버린
임용제도하에서는 좋게 말하면 그들의 자부심과 프라이드, 나쁘게 말하면
오만과 독선을 가져오기 쉽다.

다섯째는 계선(line)과 막료(staff)의 기능과 권한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행정학자들은 비서관(Assistant to the president)이 자칫 제2인자
(Assistant president)가 될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거니와
시스템보다는 인적요소가 더 많이 작용하는 사회일수록 그 개연성이 크다고
볼수 있다.

다행히 새정부는 청와대비서실의 기능을 보좌기능에 국한하고 내각이
책임행정을 구현하도록 한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할
사항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지시하는 TV장면을 더이상 보게 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