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사.하이터치 공동기획 -

이면우 <서울대교수>

수년전부터 국내기업에 경영혁신 열풍이 불어 닥쳤다.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 다운사이징, 권한이양, 학습조직,
벤치마킹 등 새로운 용어가 수없이 지상에 오르내렸으며 해외 석학의
초청강연과 국내 전문가들의 해외연수도 줄을 이었다.

이와같이 갑자기 경영혁신 열풍이 불어닥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해외 일류기업들이 경영혁신을 추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우리도 경영혁신을 하여 성과를 내보자는 생각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남의 기술을 모방해오던 습성이 몸에 배다보니 경영철학까지도 모방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기업에 나가 강연을 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기업의
경영혁신이 그 본래의 뜻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채 잘못 추진되고 있으며,
이와같이 추진하면 결국은 실패할 것 같다는 내용의 호소를 반복하였다.

왜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경영혁신을 추진하였던 기업들에 그동안 추진한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거의 예외없이 최고경영층의 강력한 후원을 확인하였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며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거론하는 경영혁신은 모두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최고경영층이 강력히 후원했다는 것은 실패의 전주곡이다.

경영혁신에 성공한 선진기업의 공통점을 보면 하나같이 회장이 직접
선도하였다.

후원을 한 것이 아니다.

설사 큰 변화를 느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경영혁신은 정신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상업무에 적용되고 이로부터 실적을 얻을 수 있어야 경영혁신
축에 낄수 있을 것이다.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개혁이 지연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원래 개혁은 공감대가 형성된 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지도자 그룹이 시범을 보이고, 관망하며 망설이던 사람들도
동참하도록 계기를 만들고, 그 계기로부터 공감대를 뛰어넘는 구심점을
창출하는 것이 경영혁신이다.

공감대가 부족하다며 경영혁신을 지연하는 것은 고지점령을 명령받은
중대가 부대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투정하면서 고지점령을 계속
뒤로 미루는 것에 비유할수 있다.

사기는 싸우면서, 전우가 다치면서, 실패를 반복하고 좌절을 극복하면서
오르는 것이다.

전투를 보류하며 기다린다고 해서 사기가 올라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영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필요충분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경영혁신의 필요조건은 위기의식이다.

무엇이 위기인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지금과 같은 조직과 방식으로는 앞으로의
사업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경영혁신의 내용은 미래의 산업여건을 전제하여야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며, 새로운 산업구조의 틀 안에서 구상되어야 한다.

경영혁신은 새로운 조직과 인력배치를 대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경영여건을 염두에 두면서 추진하는 경영혁신은 실제로는
경영혁구이다.

경영혁신의 충분조건은 안하면 죽는다는 점이다.

위기의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미국기업의 회장은 달려오는 열차 앞에
11명의 임원모형을 제작하여 각 임원에게 선물하였다.

인형에는 임원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상황을 보면 달려오는 열차에 곧 치여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회장이 추진하는 경영혁신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는 죽겠구나.

경영혁신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지 못해, 마지
못해 하는 것이다.

왜 경영혁신은 필사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가.

험한 산을 등반할 때 등반대장은 등반대를 어떻게 인도하는가.

등반길이 험하다보니 예기치 못한 사고도 많이 겪었을 것이다.

부상당한 사람, 몸이 아픈 사람도 생겼을 것이다.

만일 이 등반대장이 모든 사정을 헤아리며 등반 일정을 조정한다면
그 등반대는 조난을 당하여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경영혁신은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뒤에서 몰고 가는 것이 아니고 회장이
맨 앞에서 선도하면서 낙오자들에게 동참과 죽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면서 계속 전진하여야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경영혁신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해외에서 성공한 경영혁신 사례의 특징을 보면 회장을 제외한 경영층은
매우 소극적이었거나 혁신을 기피하였다.

왜 경영자는 경영혁신을 싫어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해외 경영혁신 사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자율보다는 지시를 선호한다.

자율은 여러 가지 신경 쓸 것이 많고 책임질 일이 많지만 주어진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은 실패에 대한 큰 부담이 없는 법이다.

둘째 경영자들은 안정된 현상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다.

변화가 많으면 이것저것 추스릴 것이 많고 실패할 요인도 많으며
불확실한 일을 계속 담당하여야 하는 것이다.

셋째 경영진들은 오래된 것을 선호한다.

오래된 것일수록 부하직원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는 일을 맡은 경영진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조할 것이다.

무언가 표시를 해야되니 가장 가시적인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우선 회사 입구와 사무실과 식당에 경영혁신의 적극적 추진을 강조하는
구호를 내붙인다.

그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평가가 내려지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할 것이다.

안하면 죽는 것은 무엇인가.

연말 매출목표 달성인 것이다.

매출목표 달성에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경영혁신을 추진할 여력이
있겠는가.

그러나 추진을 안할 수도 없으니 주기적으로 경영혁신 성과보고회를
열것이다.

보고회의 결론으로 "전원이 힘을 모아 경영혁신에 적극 동참하자"고
훈시할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연말 매출목표 달성에 모든 관심을 쏟는 것이다.

필자는 기업을 방문하여 경영혁신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대기업중에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잭 웰치 회장이 추진한 경영혁신을
모델로 삼고 적극 추진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필자는 잭 웰치같이 추진하면 우리 기업들의 경영혁신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잭 웰치는 경영혁신 과정에서 현재 세계 일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세계
일등이 될 가망성이 있는 기업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렸다.

만일 어느 대기업에서 잭 웰치식 경영혁신을 추진한다면 이제 세계
일등인 사업이 없고, 가까운 장래에 세계 일등이 될 회사도 없으니
그 기업은 순식간에 공중 분해될 것 아닌가.

경영혁신의 출발선부터 다른 것이다.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어느 기업 임원들에게 왜 경영혁신을 추진하느냐고
물었더니 세계 일류기업이 되고자 경영혁신을 추진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되물었다.

세계 일류기업이란 무엇이냐.

매년 매출액이 늘고 수익성이 좋은 사업을 하는 것이 일류기업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마피아 같이 매년 영업실적이 늘어나는 조직을 본적이 있는가.

마피아는 지역쟁탈전에서 이기기만 하면 매출액이 순식간에 2~3배로
늘어난다.

수익성이 좋은 사업의 예도 들었다.

브루나이 왕국의 볼키아 국왕은 브루나이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의 80%를
자신의 몫으로 챙긴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사업의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마피아보고 세계 일류기업이라고 하지 않고, 브루나이
국왕을 보고 세계 일류기업의 경영자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내야한다.

즉 창조하여야 하는 것이다.

창조하고 성공한 것을 보고 그 기업을 따라 모방한 다른 기업들도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이류기업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류기업의 충분조건은 보고 따라하는 아류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세계 일류기업이 있는가.

그렇다면 초일류란 무엇인가.

새로운 사업분야 개척과 독특한 경영철학으로 국적과 사업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 일류기업들이 그것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군데
없을 것이다.

한국에는 없다.

우리기업들이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설렁탕 이론을
개발하였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시킬 때 흔히 따귀 빼고 기름 빼고 달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

우리네 경영혁신 추진팀이 좋아하는 설렁탕은 조금 다르다.

설렁탕을 주문할 적에 따귀 빼고, 기름 빼고, 국물 빼고, 밥 빼고 달라고
한다.

남는 것이 무엇인가.

제너럴 일렉트릭은 사업구조조정과정에서 3백여개의 사업부를 13개
사업부문으로 축소하였다.

경영혁신을 추진함에 있어 제너럴 일렉트릭이 한 것처럼 하자니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가.

1, 2등 하는 회사만 남기고 모두 처분하자니 세계적인 일류기업이 없어서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따귀를 빼는 것이다.

IBM 같이 한꺼번에 12만명을 감원하자니, 우리네 정서에 맞지 않아서
보류한다.

기름을 뺀 것이다.

포드자동차가 세계적인 히트 차종을 냈던 개발과정을 도입하자니 첨단
기술과 첨단부품의 수배가 어려워서 포기한다.

국물을 뺀 것이다.

크라이슬러와 같이 경영혁신을 추진하자니 우리 회장의 일하는 스타일과
너무 다르다.

아이아코카 회장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경영혁신에 달라붙었으나 우리
회장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이제 밥을 뺀 것이다.

이렇게 다 빼고 나면 설렁탕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왜 국내에서 추진하는 경영혁신이 모두 정체된 채 표류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베꼈기 때문이다.

설계도를 베끼고, 공정을 베끼고, 부품을 베끼고, 디자인을 베끼다 보니
경영혁신도 베껴서 추진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옆자리에 앉은 학생의 답안지를 베끼면서 그 학생의 이름까지
그대로 베끼는 것과 같다.

경영혁신 성공의 요채는 무엇인가.

독특한 경영철학이다.

남의 철학을 베껴대면서 추진하는 경영혁신이 성공할 것 같은가.

마치 일류가수의 히트곡만 흉내내는 밤무대의 모창가수가 세계
일류가수의 꿈을 불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계적인 가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남이 부른 노래는 따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자기 특성에 맞는 신곡만을 불러야 하며 쉽사리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자기의 노래만을 고집하여야 한다.

남의 기술, 남의 제품을 너무 오랫동안 베끼다 보니 남의 경영철학까지
모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조건 베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