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친 격"

98년 정보통신서비스 시장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다.

세계무역기구(WTO)통신시장개방협상의 타결로 국내 시장의 문을 열어젖힌
(엎친)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한파로 투자여력이 급격히
떨어지는(덮친) 업계가 하루하루를 어렵게 연명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따라 올해 통신서비스시장에는 외국업체가 몰려오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는 한편 국내 업계의 구조개편이 가속화되면서 업체간의
합종연횡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WTO 통신협상은 외국인이 국내 통신서비스산업에 참여하고 새로운
통신서비스가 등장할수 있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열었다.

올해부터 외국인의 지분한도가 유.무선 구분없이 33%(한국통신은 20%)까지
허용되고 내년부터는 한국통신을 제외하고 외국인이 대주주가 될수도 있다.

지금까지 외국인은 무선통신회사에 한해 주식을 33%까지 소유할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한국통신등과 같은 유선전화회사에도 출자할수 있게
된다.

대주주 지위까지 허용되는 99년부터는 국가기간망인 유선통신사업에도
외국인이 경영하는 회사가 생길수 있다.

이는 우리끼리 "사이좋게 나눠먹던" 기존 구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경쟁구도가 형성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회선재판매와 같은 신규 서비스 허용은 경쟁구도 재편을 가속화시킬
요인으로 손꼽힌다.

별정통신사업이란 이름으로 올해부터 새로 생기는 회선재판매 인터넷
전화 등은 저렴한 요금을 무기로 국제및 시외전화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전화사업자의 수익기반인 이 황금시장을 신규업체들이 앗아간다면
기존 회사들도 가격인하 등으로 맞대응,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시장개방과 그에따른 경쟁격화로 가능성이 높아진 통신서비스산업의
재편은 IMF한파로 눈앞의 일로 다가왔다.

극심한 자금난으로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한 개인휴대통신(PCS)업체들은
기지국 확장등에 차질을 빚게 됐으며 단말기구입 보조금등을 이용한
과감한 가입자확보 드라이브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이렇게 되면 기존 선발업체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한 후발 업체들이
살길을 찾아 나설수 밖에 없고 그 결과가 합종연횡으로 나타날 것이란
예측이다.

이같은 예측을 뒷받침하는 현상도 이미 생겼다.

지역무선호출사업자들이 시티폰사업을 포기키로 한 것이나
한국통신프리텔과 한솔PCS가 지방의 기지국을 함께 사용하는 로밍협정을
맺은 것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2이동전화회사인 신세기통신의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더구나 IMF가 통신서비스업체에 대한 개방도 금융등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확대할 것을 들고 나온다면 외국인에 의한 국내 통신서비스업체
인수도 앞당겨질수 있다.

정보통신부는 통신서비스시장 개방은 WTO협정에 의해 IMF사태 이전에
확정된 것으로 당장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팽창기에 들어선 한국의 통신서비스 시장을 탐내고 있어
낙관할수만은 없는 상황이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IMF사태는 WTO체제를 이용한 대외진출 전략에도 차질을 가져올
전망이다.

WTO체제로 외국 통신 서비스시장도 같이 열리는데 대비해 SK텔레콤 등은
해외 통신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외환위기로 재원마련이 어려워진데다 원화값이 떨어져
투자규모도 2~3배로 늘어났다.

이에따라 일부 업체는 신규사업을 아예 포기하고 이미 사업권을 확보한
지역에 대한 투자도 무기연기하기로 했다.

결국 올해 국내 통신서비스산업은 든든한 기반을 갖춘 선발 통신업체들은
보수적인 경영으로,신규업체들은 자생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기반확보를
목표로 하는 살아남기의 한해가 될 전망이다.

< 정건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