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업체 등 기업들의 연말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은행창구에선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내년초에도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수출여건도 그리 호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창열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 30일오전 은행회관에서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장과 정해주 통산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22개 은행장회의
를 소집, 이날부터 무역업체들의 기한부 수출환어음(USANCE)과 일람불
수출환어음(AT SIGHT) 등 신용장방식의 수출환어음을 전량 매입하라고 지시
했다.

임 부총리는 또 기업들의 연쇄도산을 막기위해 은행의 기업대출현황을 매일
점검, 기업대출을 늘리는 은행에 대해서는 후순위채매입을 추가해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부총리의 이같은 지시에도 불구하고 연말결산을 앞둔 은행들은
수출환어음매입과 대출재개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연말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8%이상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데다 보유하고 있는 달러화도 없어 기업여신을 재개하거나
수출환어음을 매입할 여력이 없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특히 수출환어음매입으로 생긴 외화부족분을 한은에서 보충해
준다는 보장이 없으며 자기자본으로 인정되는 후순위채매입한도도 꽉차 있어
정부의 대책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날 수출환어음매입을 늘리라고 일선 영업점에 지시한 은행은 한
은행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수출업체등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좀처럼 호전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내년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업자금담당자들은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는데 혈안이 돼있어 만기가
도래한 어음을 당좌대출로도 막기가 힘들다며 이런 식이라면 내년 3월까지
버틸 기업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특히 중소수출업체들은 11월이전에 할인했던 무신용장방식의 수출환어음
(DA DP 등)과 유전스 등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는데도 상환을 요구받고
있어 자금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모피의류업체인 극동양행의 김상기 전무는 "은행들은 수출업체들이 단기
자금으로 활용하는 수출자금까지 입금즉시 대출금과 상계하고 있다"면서
"수출을 하고서도 돈을 만져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회사채(3년)유통수익률은 기업들의 자금난을 반영, 전날의
연 29.49%에서 30.89%로 뛰어올랐다.

< 이동우.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