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최씨는 둘이만 있으면 제 와이프에게 하듯이 덤벼든다.

그리고 김치수에게서는 결코 받아보지 못한 희한한 동침의 경험을 속속
선사하는 것이다.

자연히 그녀는 아름답고 촉촉한 피부를 갖게 됐고 잊혀져가던 인생의
봄을 되찾아냈다.

"당신 전보다 피부가 한결 부드러워졌구료"

"온천에 자주 다녀서 그래요. 무슨 낙이 있어야죠. 당신은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자기 사업에 바빠서"

"아, 미안하오. 그렇지만 우리는 형제같이 지내는 사이가 아니오? 당신도
동침하고 싶고 그렇소?"

김치수가 눙치며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펄쩍 뛰면서,

"망측해라. 내 나이가 몇살인데, 그런 엉큼한 소리를..."

켕기는 데가 있는지라 더욱 질색팔색 한다.

두 노익장께서 잘도 노슈.

여하튼 최씨가 점점 덩어리 큰 돈을 요구할 때까지 마나님은 최씨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 줄로 오해하며 행복해 했다.

그녀는 왕년의 아름다웠던 자신의 환상을 쉽게 버리지 못 한다.

그러나 도둑질도 길게 하면 잡힌다고 언젠가는 동티가 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마누라가 예전에는 안 쓰던 향수를 뿌리고 있다.

김치수는 육십팔세의 바싹 마른 마누라 얼굴을 쳐다본다.

"이봐, 이게 무슨 향수인데 꽤나 냄새가 좋구려"

"나는 요새 향수도 쓰고 남들이 하는 것을 다 해봐요. 다 산 인생인데
나라고 이렇게 재미없게 늙어가서야 쓰겠수. 온천에 가서 온천욕도 하고
마사지도 하고 맛난것 먹고, 그리고 산천구경도 하고 그러지요"

"당신도 그 카바레라는 곳에 가봤어?"

"춤을 출줄 알아야 가지요. 당신도 참, 당신이 그러니까 나도 그런줄 아슈?"

그녀의 말투가 옛날보다 많이 부드럽고 애교스럽다.

김치수는 그러나 자기 노부인께서 운전기사와 놀아난 것은 상상도 못 한다.

동티가 난 것은 둘 다 똑 같은데 우연하게도 최씨와 처음 동침했던 그날
밤은 바로 김치수가 미화와 온천에 갔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호텔에 들었어도 시간이 달라서 서로 모르는채,
하느님의 가호로 아직 현숙한 남편이요 아내로 남아 있는 것이다.

두 노부부는 이제 그들이 개인적으로 은행에 모아두었던 쌈지돈을 슬슬
풀어 쓰고 있었다.

김치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김상무에게 전화할 일이 있어요. 즐겁게 지내시게"

하면서 전에 안 하던 짓으로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날리고 방을
나간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