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8월 대통령긴급명령으로 실시된 금융실명제가 대폭 손질된다.

국회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유보, 무기명장기채발행 허용, 실명전환자금에
대한 자금출처조사 면제범위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실명제대체법안을 확정,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상 실명제의 포기로까지 비쳐지고 있는 이번 보완조치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무기명장기채의 허용으로 실명제의 근본이 훼손될뿐아니라 변칙증여와
상속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종합과세의 유보로 고소득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 등은 부정적으로 보는 대표적인 이유다.

사실 경제정의와 형평의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오히려 금융거래를 자기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현실을 보면 그에 대한 논란을 벌일 여유가
없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기업 자금난을 해소하는데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조치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그동안 금융실명제가 사정이나 정치보복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에 국회가 실명제 대체입법을 통한 보완조치를
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사실 실명제 실시이후 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본래 겨냥했던 지하자금 양성화는 거의 이뤄지지 못한채 자금흐름을
왜곡시켜 과소비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많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일정규모 이상인 사람만을 대상으로 실시함으로써
"돈많은 사람"을 차별적으로 지목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문제가 많다.

부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적지 않은 우리사회 현실에 비추어 이같은
특별취급이 자금흐름을 왜곡시키는데 상당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보완으로 이같은 문제들이 해소될 경우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통한 산업자금 동원에 상당히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실명제 보완은 응급조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그 효과도 신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왕 보완할 바에는 그
취지에 맞게 좀더 과감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유보를 내년 귀속소득분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금년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또 무기명 장기채권의 발행도 금리조건을 시중보다 낮게 적용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럴 경우 아무리 비실명이라고 하더라도 팔리지 않을 우려도 없지 않다.

물론 번잡한 행정절차와 법률의 소급적용, 세수의 감소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흔히 제도보완을 하면서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려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구체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 열리는 국회 재경위는 물론 본회의에서도 그런 관점에서 미진한 것은
없는지 보다 심도있게 심의해주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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