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엇보다 지영웅이 절망한 나머지 다시 옛날 불량배로 돌아갈까봐
걱정이다.

지금의 지영웅은 옛날의 압구정동 건달이 아니다.

신선하고 이미지 좋은 스포츠맨으로 탈바꿈되어 잘 나가고 있다.

백명우는 다른 좋은 여자와 결혼하면 되지만 지영웅은 충격을 받고 다시
옛날의 파락호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영웅과 지내는 동안 지성및 교양의 차이에서 겪은 여러
곤란하고 불편했던 점 또한 언제나 영신을 따라다니며 고통을 줄 것이다.

그러한 불균형은 나이의 갭과 더불어 그들의 사랑을 상처 입힐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교육의 유무가 가져오는 치명적인
갭이다.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웃으면서 백명우에게 선선히 순종한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면 어디서 하죠?"

김치수는 딸이 마음을 고쳐먹고 백명우의 의사를 따르는 것으로 알았고
백명우는 그녀가 생각하던 것보다 그 골퍼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두 남자의 판단은 다 틀렸다.

사실 결혼상대로서의 백명우는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매너라든다 명성이 모두 자기에게는 과남한 남자였다.

그녀는 누구에게 이기고 싶다는 식의 생각보다는 평화에 익숙해 있는
합리주의자다.

그녀는 이미 지영웅을 마음속으로 배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최후의 순간에는 상식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는
합리주의자였기 때문이다.

50세인 자신이 30세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억지다.

그 억지는 오래 가지 못 한다.

세살정도 어린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무리가 없겠지만 20년 차이는 무리다.

그녀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다.

그 각오는 나날이 굳어가고 있다.

지영웅의 분노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백명우가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신사도를 보이는 이상 그를
따르기로 한다.

집앞에서 헤어질때 백명우는 그녀에게 따뜻한 키스를 보낸다.

그리고 포옹 또한 전과 달리 열정을 담고 있었다.

그가 돌아가고 잠시후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골퍼 친구가 아무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말씀 잘 하셨어요.

그는 좀 야만적인 남자니까요.

그런데 백명우씨는 어쩌면 그렇게 침착하세요"

"하하하하, 경쟁 상대가 없는 것은 좀 싱겁지 않을까요? 물론 나는
영신씨 가족 모두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특히 아버님은 저에게 친아버지 같은 애정으로 어필하니까 다른 점들은
다 참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혼이란 역시 가정과 가정의 결합이기도 하니까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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