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영신이 그 날은 지영웅이 페블비치로 가기 전날이었으므로 그가
떠난 후로 잡고 싶어서 망설인다.

"저는 1월5일이 좋겠어요. 이왕이면 백명우씨가 지붕과 창이 예쁘다고
하던 도쿄의 그 교회에서 올리면 어떨까요?"

"아, 그 교회요?"

그러나 백명우는 선뜻 그렇게 하려고 안 한다.

"지난번 도쿄에 갔을때 산책하면서 백명우씨가 저런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렇게 생각해봤어요"

영신이 아주 상냥하게 말한다.

"한국에서 식을 올리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가면 어떠냐?"

"저도 김회장님 의견에 찬성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요.

신혼여행을 일본으로 가서 그 교회에 다시 한번 가보면 어떨까요?"

영신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퍼져 지영웅이 알게 된다면 그의 무서운
표효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영신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백명우는 지영웅의 자존심에 흑칠을 해주고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정정당당하게 차지하고 싶다.

나이 어린 무식한 골퍼에게 영신을 양보하기에는 그의 대쪽같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 골퍼를 겨냥한 그의 결혼계획은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진행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경쟁심이 강한 예술가였다.

"내 의견을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영신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어머니하고 날짜를 보아 놓았는데, 점쟁이가 1월5일 동쪽으로 가서
하래요. 그렇게 안 하면 큰 재앙이 낀다고 했어요"

그녀는 지영웅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면 그가 시합하고 있는 동안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자기가 잡은 날짜를 고수하기로
한다.

"백군, 우리나라에는 손재가 끼고 액이 낀다는 날이 있어요. 나도
영신이가 와이프와 함께 길일을 잡았다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이"

김치수도 뭔지 모르나 영신이 한국에서 하는 것을 꺼려하므로 영신을
따르기로 한다.

그러나 백명우는 도쿄에서 결혼식 올리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

떳떳하게 한국에서 하고 싶다.

"저는 첫 결혼식이니 만큼 내 조국에서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어쩔 것인가.

영신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3일날 시합을 시작해도 지영웅이 귀국하는 날은 아마도 중순께가
되지 않을까?

그녀는 지금부터 비장한 각오를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

만약에 지영웅이 자기들 신혼여행을 뒤쫓아와서 행패를 부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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