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금융시장이 어제 다시 급속히 악화된 까닭은
1년안에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는다는 소문이 돌자 해외
금융기관이 외채의 만기연장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최악의 경우 지난 80년대 남미의 브라질이나 멕시코처럼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의 외환수급사정은 절박하다.

그러나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경제로서는 대외지급불능을 뜻하는
모라토리움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 특히 다음의 몇가지 사항에
유의해야 하겠다.

무엇보다 먼저 외환위기의 실상을 솔직히 알리고 국민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외환당국은 어제 외환위기에 대한 언론보도로 불필요한 불안심리가 형성돼
원화환율이 급등하고 있지만 무역수지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만큼
국가부도사태의 염려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기적인 외환수급이 발등의 불인 지금 이같은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얘기라고 밖에 볼수 없다.

현재 돌고있는 외환위기설은 사용가능한 외환보유고와 IMF 등의 자금지원을
합하면 올연말은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내년 1월에 돌아올 1백억달러 가량의
외채상환은 비관적이라는 내용이다.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이 난데다 국가신용등급이 급락해 외채연장비율이
예상보다 훨씬 낮은 10~20%선에 불과하며 내년초에 발행할 예정인 1백억달러
규모의 외화표시 국채발행마저 성사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한국기업의 현지금융을 포함하면 총외채가 2천6백억달러에 달하며
이중 절반가량이 단기외채여서 외채상환위기는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이같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며 진상을 알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취임당시 앞으로는 외환보유고나 외채실상을 숨김없이 밝히겠다고 한
임창열 부총리의 약속은 언제 지킬 것인가.

또한 재경원은 외국금융기관 국내지점들이 만기외채에 대한 정부지급보증을
요구해 오면 2백억달러 한도에서 지급보증한다는 내용의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이를 수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대외지급보증은 상환능력을
따져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개별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부도가 자칫 국가부도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는
최후의 방파제로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결방안은 IMF 권고사항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 뿐이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은 최대한 신속히 정리해야 하며 이에따른 도산과
실업의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

금융기관들도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외화자산을 대폭
감축해 단기외채를 갚아야 한다.

아울러 기업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외국기업을 상대로 자산매각
인수합병 지분참여 직접투자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어차피 맞은 외환위기이고 해결방안은 해외신인도 제고밖에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IMF가 요구하는 이상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