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화사치 추방하자 ]]]


서울의 한 백화점에선 개점 9주년을 기념하는 무의탁노인돕기 모피제품
할인판매전이 열리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전시된 제품의 면면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K사의 모피코트는 5백60만원에 팔리고 있다.

원래가격 8백만원에서 30% 할인된 가격이다.

또 C사와 다른 G사의 6백60만원, 4백만원짜리 모피제품도 버젓이 전시됐다.

모피점을 들락거리는 고객은 예상외로 중년부인보다는 젊은 여성들이 더
많다.

여대생이 친구와 함께 쇼핑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또 지난 4일 명동에서 열린 한 여성단체의 과소비추방캠페인에선 참여한
중년여성들의 3분의 2가 무스탕이나 밍크코트를 입고 행진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1억원이 넘는 모피코트도 선을 보이고 있으니 외지(프랑스 르피가로)가
"한국시장은 세계고급패션계의 엘도라도"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인의 호화사치는 통계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소비자보호원이 지난달말 발표한 소비실태분석에 따르면 배기량 1천cc
이하의 경차판매비중이 일본 23.0%(94년)인데 비해 한국은 3.9%(95년)로
6배나 높다.

4백리터 이상급 냉장고의 판매비중도 55.9%로 일본(23.0%)보다 배이상
높다.

또 TV의 교체시기는 7.1년으로 소비천국이라는 미국(11년)보다 짧다.

세탁기사용기간도 6년으로 미국(13년)의 절반이며 승용차의 연간주행거리는
2만5천km로 미국(1만8천km)이나 일본(1만km)보다 훨씬 길다.

95년부터 지금까지 승용차 가구 화장품 모피의류 골프용품 스키용품
샹들리에 고급신발 술 담배 등 10개 호화사치품의 수입액이 49억2천만달러
(약 7조5천억원)에 달했다는 관세청 집계도 있다.

호화소비는 청소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근 서울 강남소재 한 중학교 3학년 학급 50명의 소지품조사에서 가방
90%, 운동화 88%, 청바지 68%, 시계 68%, 필기구 58%가 외제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호화사치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저해한다.

생산적인 곳으로 들어가야 할 한정된 자원이 호화사치품을 만드는데
쓰이면 시장이 왜곡되고 국가경쟁력은 떨어진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선 호화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물신주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소비는 미덕이지만 호화사치는 악덕이다.

< 백광엽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