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할 때 어느정도 각오는 했지만 최근의 물가불안은
예상보다 훨씬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이미 휘발유 등 에너지관련 제품과 밀가루 등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부 생필품 가격이 잇따라 몇차례씩 오른데 이어 대통령선거가 끝나면서
그동안 억제됐던 공공요금과 개인서비스요금은 물론 공산품을 포함한
전반적인 물가가 줄줄이 인상될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휘발유를 비롯 각종 유류의 교통세를 최고 7.6%까지
인상하고 전기요금을 평균 6.5%, 가스가격을 22.5~34.5% 올리기로 했다.

에어컨을 비롯한 13개 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율도 현행 15~20%에서 30%로
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서민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각종 교통요금과 생필품가격의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환율상승이 본격화되기 전에 도입된 원자재를 주로 사용해
환율상승이 제품원가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이제부터는
원자재가격상승이 본격적으로 제품가격에 반영될 것이라고 하니
물가불안은 더욱 확대될 공산이 크다.

벌써부터 시중에서는 일부 생필품의 사재기 등에 따른 수급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서울 시내버스업체들은 면허 반납에 이어 오는 26일부터
일방적으로 요금을 인상하거나 운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환율상승의 후유증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물가상승률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내놓은 "3%이내
억제"공약이 지켜지기 어려울 것임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약에서 제시된 5%수준을 훨씬 넘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우려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무분별한 물가인상을 단속하겠다고 정부가 나섰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는 인상이다.

물가는 뚜렷한 상승요인이 있는 이상 무조건 억제한다고 될일이 아니다.

행정규제를 앞세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경우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말해준다.

우선 정부는 뾰족한 정책수단이 없음을 탓하지 말고 통화공급조절을
포함한 총수요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원가상승분을 흡수하기 위해 임금
금리 땅값 등 생산비용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종합적인 물가안정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및 원가절감 노력으로 제품가격 인상요인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흡수해야 한다.

또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하며 불합리한 유통
구조를 정비해 유통마진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이번 기회에 과소비와 사치병을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뛰는 물가에는 절약만한 약이 없다.

특히 에너지의 수입의존도가 97%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에너지
분야에서 소비행태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결국 물가문제는 정부 기업 소비자 등 각 경제주체들의 유기적 협력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해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