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한 외국인 비즈니스맨과 인터뷰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조언이나 충고,심지어 선진경험을 단순히 소개해달라는 요청에까지 손을
내젖는다.

행여 말 잘못 했다가 "반IMF감정"의 희생양이 되지나 않을까 몸조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얼마전 미국 모주의 경제장관이 무역사절단을 이끌고 내한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는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허락했던 그
장관은 약속 몇시간전 돌연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사정상"이란 이유에서였다.

미국 대사관과 주한외국인 비즈니스맨들이 "언론과의 접촉은 삼가라"고
강력히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방한인사가 이정도니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외국기업들의 국내 홍보를 담당하는 한 PR업체 사장은 "IMF가 한국을 점령
하고 헐값에 한국기업들을 손에 넣으려는 계략을 갖고 있는 양 떠들어 댔던
정부와 언론태도에 주한 외국인 비즈니스맨들은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세기말의 경제위기를 보면서 쇄국정책으로 근대화에
실기한 19세기말을 떠올린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마저 충고를 포기하고 함구해 버릴 정도라면
우리의 맹목적인 쇄국병은 "치명"적인 수준이 아닐까.

얼마전 한국을 방문했던 세계 유수의 컨설팅업체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돌고 돈다. 누구것이 우월하냐 열등하냐의 자존심 싸움은 의미가
없다. 80년대말 미국기업들은 경기침체속에서 일본식 경영을 수혈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결과 경쟁력을 다시 회복했다. 이제는 일본이 미국을
배우고 있다. 한국식 발전모델은 그동안 놀라운 약효를 발휘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먹혀들지 않게 됐다. 오히려 병을 깊게 하는 독약으로 변했다.
하루빨리 그 약을 끊고 새로운 치료제를 구해 와야 한다"

시대착오적 감정에 갇혀 갈팡질팡하기에는 21세기 글로벌 룰이 너무나
냉혹하다.

노혜령 < 산업1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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