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문민정부의 탄생.

대통령은 외부 인사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칼국수를 들고 공무원에게는
골프를 못치게 했다.

사정의 칼날이 번뜩였고 군부의 핵심파벌을 무력화시켰다.

대통령은 개혁의 기수였고 지지율은 사상 유례없이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경제는 풍전등화의 신세다.

신용공황상태에 빠졌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6백억달러 가까운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많은 직장인들은 해고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약 5년여 전과 현재의 우리사회 모습이다.

오랜 민주화 투쟁경력을 가진 진정한 민주화의 기수라던 김영삼대통령은
임기초에 개혁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었다.

국민들은 오랜 부패의 사슬이 사라질 것을 믿었고 아시아의 호랑이가
세계의 그것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환상이라는 인식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권력집단이 나타났고, 정치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과거의
악습은 그칠줄을 몰랐다.

급기야는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그 실망의 터널은 나라가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 극단적인 상황으로
우리를 내몰았다.

아시아의 호랑이가 세계의 그것이 된다는 장미빛 정치구호를 믿고 개인
소득 1만달러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회원국의 소비자답게 살아왔던
시민들은 이제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구호앞에 내던져졌다.

우리 경제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상황이 어려워졌는데도 애써 부인해온 정부, 실상을 파헤쳐서 정부를
비판하고 일반인들에게 알렸어야 할 언론의 직무유기, 실력이상으로 판을
벌인 기업 등등 여러가지 책임론이 나오고 있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매우
간단하다.

지난 93년 3월이후 현재까지 나라를 이끌어온 집권세력의 실정이 주요
이유다.

물론 국민이나 기업 등 여러 경제주체들의 잘못이 없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세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정치논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현실에
적용해온 집권세력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어떤 특정집단이나 개인의 책임소재를 따져 손상당한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다소나마 어루만질 때가 아니라 모두가 나서서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칫하면 교과서에서나 보았던대로 수레에 지폐뭉치를 가득 실은채 생필품
을 사러 가야했던 전후 독일의 살인적인 인플레를 실감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책임론을 들먹여야 아무런 도움이 안될 터이니까 말이다.

집권세력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92년 겨울 우리의 선택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를 아프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 어느때보다 더 현명한 선택의 중요성이 절실한 것은 바로 이런 경험
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는 18일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세기말과 새로운 세기에 걸쳐 우리 삶의 틀을 만들고 민족의 장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대통령을 뽑는 것이 그것이다.

어떤 선택이 현명한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지난 시대의 경험을 거울 삼아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지도자, 사실상
IMF의 관리체계아래 들어간 우리경제를 빠른 시일안에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지도자, 정치논리가 경제를 지배하지 않도록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찾는
것, 그것이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

60년대의 막걸리와 고무신선거는 물론이고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망국적 현상으로 지목돼온 지역대표를 뽑는 선거가 되풀이 될 수는 없다.

앞으로 선거일까지 남은 일수는 6일.

대통령선거에 나선 7명의 후보중 이런 기준에 맞는 사람을 찾아보자.

혹시 꼭 맞는 사람이 없다면 기준에 가까운 사람이라도 찾자.

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터이니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