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사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최근 동남아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자유로운 금융시장 구축만이 유일한 해결사라고 주장하는
미국정부와는 판이하다.

그는 현 금융 시스템이 <>스피드 <>다양성 <>복잡성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속도가 빨라지고 거대해지는 동시에 단일화되는 추세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단일화되고 개방된 현대 금융 시스템은 장점도 있는 반면 동시에
엄청난 재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전체 시스템중 한 구석에서 조그마한 결함이라도 생기면 전체가 마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따라서 국경없이 자유로운 지구촌 금융시장을 만들려는 시도는 산업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것이며 제3의 물결이 몰아치는 사회에선 내부적
으로 실패를 교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토플러는 또 일본과 중국이 달러화를 대거 매개, 금융시장이 동요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유일한 대안은 미국 뿐이라며 달러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말하고 있다.

< 정리 = 강현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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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후의 시스템 =최근 세계 주식시장의 혼란스런 움직임과 실물
경제와의 괴리현상은 옛날의 경제적 관점으론 설명할 수 없다.

과거의 규칙과 개념들은 산업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넘어감에 따라
더이상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금융 시스템은 대공황이 일어났던 1929년과
결코 유사하지 않다.

금융 시스템 자체도 사회변화에 따라 산업사회 단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주식시장과 금리, 각종 파생 금융상품의 급격한 등락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구조적 통합성의 한계에 다다르는 등 변혁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스템 엔지니어들은 종종 "사냥 행위"(Hunting Behavio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한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그 진동이 시스템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증폭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균등 조건하에서 화학 시스템의 분석으로 77년 노벨상을 수상했던
일리야 프리고긴처럼 사회 변화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불안정성이 증대될
경우 시스템의 반응은 극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스템은 기상천외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안정한 시스템에도 역시 규칙은 존재한다.

이 점은 화학 시스템은 물론 정치나 금융 시스템에도 마찬가지다.

즉 불안정성이 크게 증가할 경우 이 모든 시스템은 위기 국면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피드백의 고리는 변화를 증폭시켜서 조그마한 조치라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겐 금융 시스템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일어나는 금융기관의 붕괴는 이전과는 다르다.

그 차이의 핵심은 시스템이 운영되는 스피드에 있다.

컴퓨터에 의한 거래시스템은 끊임없이 시장의 사소한 변화에도 반응, 이를
증폭시킨다.

수십억건의 거래가 전자 속도로 국경을 넘어 돌진한다.

이런 고속의 금융거래는 현 사회변화의 속도를 반영하며 가속화시킨다.

역사(사회변화)는 가속도가 붙고 돈은 이를 따라잡기 위해 더 속도를 내며
이는 다시 역사의 속도를 한층 높이게 된다.

이런 가속화는 심각한 영향을 초래한다.

시스템 각 부문에서의 거래 속도의 불균형으로부터 새로운 불안정성이
나타난다.

금융거래 속도에 힘을 가함으로써 시스템 자체를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리얼타임 금융"으로의 전환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새로이 떠오르는 금융 시스템은 빠를 뿐만 아니라 독특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자기가 속해있지 않은 투자 조직과 형태를 모두 추적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여기에 세계화 개방화에 따른 복잡성이 나타난다.

스피드와 다양성 복잡성은 이전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질적으로 다른
금융시장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시스템 자체는 하위 시장을 하나의 단일한 통합 구조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스스로 팽창해간다.

이러한 과정은 돈이 거의 규제없이 시스템간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금융 자유화를 동반한다.

간단히 말해 금융 시스템은 점점 더 빨라지고 비대해질 뿐 아니라 더욱더
단일화되고 통합되는 것이다.

이같은 세계적 통합으로부터 이익을 얻게 되는 일부 기업은 이를 환영한다.

그렇지만 시스템의 단일화와 비대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많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소한의 규제로 단일하고 완전히 개방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내부의 밀폐된 칸막이 없이 초대형 탱크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적절한 칸막이나 안전장치가 있다면 특정 부분이 고장나도 전체 시스템은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안전 장치가 없으면 바늘 구멍만큼의 결함이라도 탱크 전체를
침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시장을 통합하려는 경주는 그것을 새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엄청난 실패를 초래할 위험성을 높인다.

한 국가의 경제정책을 선진국 모임인 G7 수준으로 맞추려는 시도는 사소한
동요를 해결할순 있어도 좀 더 큰 변동 위험성을 증대시킨다.

지폐에서 전자화폐로, 산업사회에서 "제3의 물결" 혹은 "후기 산업사회"
로의 변화속에 규제가 없는 자유로운 금융시장의 창출을 위해 분별없이
애쓰는 것은 산업사회적 사고의 산물이다.

좀 더 발달한 경제를 향한 움직임은 새로운 제도와 내부에 실패를 교정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진 하위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새로운 장치들은 대공황이후 탄생한 과대평가되고 쓸모없는 안전
조치와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유로운 시장"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이나
자본주의는 이제 종점에 다다랐다는 생각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제3의 물결에 걸맞는 금융제도 설계를 시작할 시기가 도래했다.

<> 미 달러화는 아시아의 유일한 투자수단이다 =미래를 내다보는데 중요한
규칙중 하나는 정치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다.

대신 경제적 현실을 꼼꼼히 살펴라.

종종 아시아의 정치가들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 자국이
갖고 있는 자산을 무기로 사용한다.

1천3백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유러 탄생후 이 돈을 유러화로 바꿀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이나 5천억~6천억달러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이를 팔고 금을 살 것이라는 주장 등이 그 실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먼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지적하는 것처럼 "하나의 단일한 통화권을
구축하려는 유럽의 계획은 거대한 실수"이다.

유러의 탄생은 정치적 관계를 악화시키고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위험성이
크다.

또 미국채의 40%를 갖고 있는 일본이 이를 내다판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13조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저축 자금을 투자할 대상은 금리가 낮은 일본
에도, 유럽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의 아시아 금융위기는 미국이 현재로선 유일하게 믿을만한
투자처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