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들이여 경들이여,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병자호란때 청군에게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인조는 마지막 한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워 나라를 지키자던 대신들의 중론이 청과 화의할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기울자 통곡하면서 이렇게 절규했다고 "실록"에 적혀 있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군왕의 체통마저 잃지는 않았다.

"내가 변변찮고 형편없어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지 경들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라고 했다는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인조의
군왕다운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또 신하들은 신하들대로 "신들의 잘못이지 전하에게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며 함께 통곡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일은 모두 "네탓"으로만 돌리는 요즘
세상에서는 듣기 어려운 미담임에 틀림없다.

1635년(인조15년)1월 30일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로 내려와 청나라
태종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삼배구고두) 굴욕적인 항복
례를 행한뒤, 청과 조선은 군신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조 이래 3백여년동안 없었던 국치를 겪은 조선은 겨우 망국의
위험을 딛고 일어서 명맥을 잇게 된다.

결국 항복이 나라를 구한 셈이다.

광해군은 명과 만주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청의 전신인 후금사이의 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관망하는 중립정책을 썼다.

그러나 인조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향명배금정책을 내세웠다.

병자호란은 임금이나 조정이 대의명분에만 이끌려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라가 망해버리는 화는 겨우 면했다 해도 국왕과 조정의 잘못된 판단이
몰고온 폐해는 이루 형언하기조차 어려웠다.

청이 휩쓸고간 서북지역과 경기지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서울의 여염집은 대부분 불타버렸다.

거리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수십만명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포로로 잡혀간 어버이나 처자를 돈을 주고 데려오기 위해 가재전답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유민이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백성들의 참상을
본 인조는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민심은 말할 수 없이 흉흉했다.

군사를 버리고 도망친 관리나 장수중에는 백성들에게 살해당한 자도
있었다.

영의정 김류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로 매도됐다.

화공을 써서 오랑캐를 섬멸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으로 왕과 대신을 속여
원수로 진급한 심기원을 극형에 처하라는 여론도 물끓듯 했다.

임금이 서울을 떠날 때 뒤떨어진 재상이나, 일찍이 시종을 역임했던
자들은 모조리 관직을 삭탈하고 파직하여 다시는 관리로 임명하지 말라는
요구도 거셌다.

"실록"에는 이 요구만은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인조도 배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면 원인을 논하기 전에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는 원칙론은 알고 있었던지, 논죄의 범위는 그다지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조는 1년을 끌다 강화도가 채 함락되기도 전에 피란했던 왕족들을 버린
채 도망친 검찰사 김경징을 사사하고 두명을 참형에 처함으로써 논죄를
마무리지었다.

"인조실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헤쳐나가는
인조의 지혜와 리더십이 유난스레 돋보이는 대목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그가 남한산성에서 서울로 돌아와 백성들에게 내린 짧막한 글에서는
그의 소탈하고 따뜻하고 솔직한 성품이 배어나오고, 백성을 사랑하는 군왕의
마음이 꾸밈없이 그려져 있다.

"지금 나는 두 아들과 두 며느리를 이미 북쪽으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내가 마음아파 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백성을 기르는 자리에 있으면서 나 한사람의 죄때문에 모든 백성에게 화가
미치게 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가.

이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머금고, 오장을 에는 듯하여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

실로 천성이 용렬하고 어두워 정치의 요체를 몰랐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합당한 정치를 펴려다가 도리어 혼란으로 몰고 갔으니...

이제 묵은 폐단을 통렬히 징계하고 가혹한 정치를 모두 없애며, 사당을
떨쳐버리고 공도를 회복시키고, 농사에 힘쓰고 병란을 그치게 하여 남은
백성들을 보전시키려 한다.

...

나의 어쩔 수 없었던 까닭을 양해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이미 지나간 잘못을 가지고 나를 멀리 버리지 말고 합심하여
어려움을 이겨 나가자"

조선왕조 역대 왕중 이처럼 솔직하게 백성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으며
사과하고 협조를 구한 왕은 없었다.

국왕인 인조의 이러한 성품이 병자호란이란 수치스런 국난도 백성들이
굳굳하게 극복해나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는 지금 무서운 경제파국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아무도 자신있게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불안은
하루하루 커져만 간다.

그런데도 아직 임기가 남아있는 김영삼대통령은 무슨 까닭에 침묵하고만
있는 것일까.

4백년이 가까워 오는 케케 묵은 절대군주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도 역사이야기 속에서나마 국난극복의 해법을 찾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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