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의 11.8%에 전 인구의 45.3%가 몰려사는 수도권.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을 너무나도
잘 지켰다.

빈 공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빼곡이 들어선 주택.

그러나 아직도 절반이상이 자기 집을 갖지 못하고 있다.

95년 건설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자가주택보유가구는 39.7%
(1백17만8천8백93가구)다.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남산에 올라가 서울시내를 바라보면서 "저 많은 집중에 내 집 한채
없다니..."라고 푸념하는 40대 가장의 탄식, 남의 집 생활 20년만에 아파트
동시분양에 당첨되던 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어느 주부의 고백, 집은 우리에게 삶의 목표이자 전부로 자리잡힌지 오래다.

재산을 증식하는 최대의 수단이요,가장 든든한 백이 내 집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성신여대 권용우(49)교수는 "이제 집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주거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권교수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대도시의 주택
개념을 새롭게 정착하기 위한 외로운 투쟁에 몸을 던진 것이다.

권교수의 "수도권과 주택문제"는 지난 91년 경실련 시민대학에서 처음으로
개설됐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광역자치단체 의원 1백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좌
였다.

반응이 좋았다.

이에 고무된 권교수는 교양강좌로 이를 재구성했다.

처음 80명 정도 수강하던 것이 8백명으로 불어났다.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 성신여대 정원 8천명중 3천명이 수강한다.

그래서 권교수의 "수도권과 주택문제"를 듣지 않고 졸업한 학생은
성신여대생이 아니라는 말도 나돈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인가.

권교수는 2시간짜리 강의 하나 만드는데 수백만원을 투자했다.

선진국의 도시장면을 학생들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30여개국 40개 도시를 돌아다녔다.

현지에서 손수 촬영한 슬라이드를 강좌마다 보여 준다.

20개로 압축한 그 슬라이드를 통해 권교수는 진정한 대도시의 주택모습이
무엇인가를 직접 학생들에게 깨닫게 한다.

그의 강의는 책상물림식 이론의 나열과는 거리가 멀다.

수많은 현장답사와 시민단체인 경실련 활동, 정책적 접근 등에서 얻은
경험의 소산물이다.

강의에 시사적이고 현실적인 예화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학생들은 강의를 듣다가 호응을 넘어 "맞아, 맞어"하며 감탄의 탄성을
자기고 모르게 지른다.

강의의 핵심은 균형있는 개발과 삶의 질 향상이다.

집을 늘리기 위한 무분별한 개발정책은 과밀화를 유발시키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게 요지다.

지난 30여년간 진행돼온 성장위주의 개발정책은 초고속의 도시화로 이어져
전 국민의 90%가 도시에 사는 초과밀화를 빚어냈다.

이를 분산한다는 수도권의 신도시 정책은 오히려 새로운 수도권 인구흡인
요인으로 작용됐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집은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돼왔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추기는 주요인이 되고 말았다.

인간이 편안히 거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해야 할 주택이 삶의
치열한 경쟁산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20평짜리 집을 마련하면 다음은 30평형대로, 다음은 40평형대로 빚을
내서라도 집을 넓혀 가는데만 혈안이 됐지 삶의 질 향상하기 위한 노력은
완전 배제됐다.

권교수는 이제 제도자체를 손질해야 할 때라고 주위를 환기시킨다.

우선 주택소유 개념을 깨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임대주택의 대폭확대를
제시한다.

20~30년 동안 매월 돈을 내면서 살아가는 임대아파트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주택가격과 전.월세가격의 폭등을 견제하고 전반적인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그린벨트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에도 비난의 목청을
높인다.

올해로 7번째 완화된 그린벨트 훼손의 주범은 공공기관이다.

그리고 현재 그린벨트내 원주민은 42%에 불과해 나머지는 외지인들이 투기
목적으로 전입한 실정임을 통박한다.

권교수는 "수도권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향하는 친환경적 친생태적으로
조성돼야 한다. 아울러 수도권의 집중화 규제정책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이 두가지 정책이 맞물려 이뤄져야만 수도권의 위상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고 말한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