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녹색 원피스 얼마예요"

"7백만원인데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이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비싸다"라는 말은 적어도 "압구정사전"에는 없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소위 "청담힐"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청담힐은 한국의 비버리힐스를 뜻한다.

미국 최고 부유층이 사는 비버리힐스처럼 최고급제품만을 팔고 있어 생긴
이름.

적어도 백만원단위 이하의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로데오거리나 청담힐에는 "저축이 국력"이라는 표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수백만원짜리 옷이나 외제차를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호기가 지배한다.

한마디로 흥청망청한 분위기에 감싸여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호기가 대부분 거품이라는 데 있다.

한국의 소비행태에 어느정도 거품이 끼어있는가는 소비재 수입액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지난 95년 1인당 소비재 수입액은
1백65달러.

일본이 1만달러를 돌파했던 지난 84년의 1인당 소비재수입은 49달러였다.

적어도 일본보다 3배 이상의 거품이 끼어있다는 얘기다.

양주수입액은 지난 91년부터 연평균 37.5%씩 늘고 있다.

93년부터 수입의류는 연평균 62.4%나 된다.

수백개의 매장중 한국제품을 파는 곳은 단 한군데뿐인 백화점이 버젓이
들어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수입품 소비에만 거품이 낀 게 아니다.

지난 94년 한국의 4백리터 이상급 냉장고 판매 비율은 55.9%.

일본의 23.0%보다 2배 이상 높다.

최근 3년간 도시근로자 가구의 외식비 지출은 연평균 18.1%씩 늘어났다.

지난해 총 소비지출중 외식비 비중은 10.0%로 일본(4.0%)의 2.5배에
달했다.

소득은 1만달러인데 소비는 2만달러라는 외국언론의 비아냥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더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과소비.

봄이나 가을철이면 한국사람들은 곤욕을 치른다.

청구서처럼 날아오는 청첩장때문이다.

부장은 최소 얼마 과장은 얼마 이런식으로 정해진 액수를 맞추다보면
월급봉투는 얇아질 수 밖에 없다.

부조가 아닌 체면치레로 가계가 멍드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소득이 없는 젊은층의 과소비는 우리사회가 소비에 관한한 막나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주말이면 소위 잘나간다는 나이트클럽 주차장에 꽉들어차는 아우디 벤츠
등 고급외제차가 이를 증명한다.

강남의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50명중 45명이 외제 가방을 쓰고 있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운동화는 88%, 시계는 68%가 바다건너온 제품이었다.

이는 모두 부모의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 산 게 분명하다.

너도나도 해외로 몰려가 흥청망청 달러를 쓰는 부모들을 보고 자란 젊은
세대로서는 이런 소비행태가 별로 이상할 게 없을 법하다.

이러다보니 6개월이상 연체된 카드 비용이 지난해말 현재 9천3백억원이나
된다.

사회전체에 두텁게 낀 거품경제.

이것을 제거하지 못하는한 경제살리기는 요원한 일이 될게 분명하다.

< 특별취재단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9일자).